파인뉴스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를 유난히 강조해온 전통적 유교윤리에 지배되어온 우리 사회에서도 금전적 유혹은 때때로 효제(孝悌)를 무력하게 한다.

특히 먹고사는 것이 어려울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워 빚어지는 부모형제간의 다툼 보다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천문학적 재산을 가진 대기업에서 재산을 둘러싸고 부모형제간에 법정 다툼이 이는 것을 볼 때마다 '돈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한달 여전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기업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전개된 형제간의 다툼에서 촉발된 두산그룹의 비리에 대한 1심판결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낸 것을 두고 법조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찬반이 분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판사는 헌법을 비롯한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헌법 규정에 비추어 볼 때 대법원장이 특정 사건을 지목하여 의사를 표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견해에 수긍하지 않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법현실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판사들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것을 액면 그대로 믿을 국민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가진자에 지나치게 관대한 재판부의 결정에 우려를 표명한 대법원장의 행동은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사법부의 사명은 사회질서에 관한 최후의 보루일 뿐만 아니라 억울한 사람이 그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마지막 장치라는 점에서 요사이 유행하는 말로는 재판을 통해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사법부가 못가진자에게 엄격하고, 가진자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면, 그러한 사법부는 이미 존재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법원장의 언급처럼 1,2억원을 횡령한 사람에게는 실행을 선고하면서 수백억원을 횡령 또는 유용하는 사람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면 대다수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거의 비슷한 사건의 경우에 어떤 사람은 퇴직한지 얼마 되지 않는 세칭 유능한(?)변호사를 선임하여 불구속되고,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 국선변호사에 의존한 까닭에 구속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 과연 국민들이 판사를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겠는가.

　물론 판사도 인간인 이상, 모든 판결이 일관성을 지닐 수만은 없을 것이며, 또 개별 사건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이 고려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는 나름대로의 상식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한 상식이 특수성에 우선하여 적용될 때 사회의 기본질서와 원칙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에도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될 만큼 사법부와 검찰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권력과 관련되어서도 그동안 사법부가 보여온 행동들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선거법 위반사범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지나치게 지지부진하므로써 결국 국민들의 공직선출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대법원에서는 선거사범에 대한 신속한 판결을 다짐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최종 판결은 거의 임기 종반에 가서야 이루어지는 현상 속에서 참된 민주주의의 정착과 정치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신장은 법치의 확립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만되고 보자는 입후보자들의 욕심을 사법부가 통제하지 않는다면 정치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심화되어 가는 양극화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고 할 때, 이제 사법부부터 먹고살기 위해 어찌하는 수 없이 저지른 이른바 '생존을 위한 범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더라도, 가진자들의 오만이 범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심판을 가하는 태도로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사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

글=오수열-조선대교수. 한국동북아학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