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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8일
<강원구 칼럼> 강원구박사의 중국여행 (15)
입력시간 : 2018. 06.05. 00:00


김구선생과 인연이 많은 가흥(嘉興)

상해에서 항주로 가는 중간이 가흥이며, 소주에서 항주에 갈 때도 가흥을 거쳐간다. 시내 매만가에 김구선생의 피난처와 임정요인들이 피난을 했던 곳이며 묵었던 곳이다. 매만가라는 이름은 마을 입구에 매화나무가 있어 그렇게 지은 모양이다. 가흥시 정부에서 한국인들을 위해 매만가를 깨끗한 거리로 되어 있다.

가흥은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으로 평원을 타고 흐르는 대운하는 양자강 삼각주로 합류한다. 강과 운하는 이곳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배를 띄워 놓고 물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수만 명에 달했다.

상해의 항일구원회 회장 저보성(楮輔成)은 자신과 가족의 위험을 무릅쓰고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의거이후 백범 김구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을 자신의 고향인 가흥으로 피신시켰다. 백범은 가흥에서 피신하는 동안 저보성 일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여러 차례 거주지를 옮기며 피살의 위기를 넘겼으며, 장진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김구 피난처는 저보성의 양 아들인 진동생(陳桐生)의 집이었다. 집은 가흥의 운하와 바로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집 뒤에 항상 조그만 배를 대기시켜 두었다고 한다. 저보성의 장남 저봉장은 중국의 해군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한 후 귀국하여 가흥과 항주에서 종이공장인 민풍지창(民豊紙廠)을 경영한 인물이었다.

1932년 여름, 가흥역에 일제 밀정들의 탐문이 시작되자 저보성은 백범의 안전을 위해 피신처를 며느리 주가예의 친정집으로 옮기게 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이때 저보성의 며느리 주가예는 하이힐을 신고 산 넘고 물 건너 백범을 친정집까지 안내했다.

김구선생은 이 장면을 ‘저씨 부인은 굽 높은 신을 신고 7,8월 불볕 더위에 손수건을 땀을 씻으며 산 고개를 넘었다. 저씨 부인의 친정 여자하인 하나가 내가 먹을 음료, 육류품을 들고 우리를 수행하였다. 나는 우리 일행ㄹ이 이렇게 산을 넘어가는 모습을 활동사진기로 생생하게 담아 영구 기념품으로 제작하여 만대 자손에게 전해줄 마음이 간절하다’ 라고 기록되었다.

1933년 여름 매만가로 돌아온 무렵 백범의 신분이 외부에 알려지자 처녀 뱃사공인 주애보(朱愛寶)에게 이미 상처한 백범을 뒷바라지하게 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당시의 생활에 대해 “오늘은 남문 밖 호숫가에서 자고, 내일은 북문 밖 운하에서 잤다”고 기술했다.

백범은 1936년 5년 살았던 처녀 뱃사공 주애보와 남경에서 헤어졌다. 백범일지에서 그는 “근 5년 동안 한갓 광동인으로만 알고 나를 위하였고,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부부같이 되었다. 나에 대한 공로가 작지 않은데, 내가 뒷날을 기약할 수 있을 줄 알고 돈으로 넉넉히 돕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때 백범이 주애보에게 100원밖에 주지 못했다.

가흥의 남호(南湖)는 시내 남쪽에 있으며, 중국 공산당이 회의를 하였는데, 우리 임정 요인들도 배를 타고 회의를 한 곳이다. 호수 입구에는 중국 공산당 제 1차대회 기념관이 있고, 중앙에는 연우루(煙雨樓)라는 누각이 있는데, 건륭황제가 이 이름을 따 승덕의 피서산장에 연우루가 있다. 남호는 왜구가 침입하여 인근 부녀자들을 잡아 사원에 가두고 한 승려로 하여금 지키게 했던 곳이다. 그 승려가 밤중에 모두 풀어주자, 왜구들이 그를 타살하였던 곳이다.

호수 주변은 작지만 가흥 시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저녁에는 야경이 아름답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코리아타운인 우의로(友誼路)에 한국 식당들이 몰려 있으며, 2008년 나도 함께 심어 놓은 나무가 있다.

해염(海鹽)의 재청별서(載靑別墅)

가흥에서 영파 쪽으로 고속도로 30km 달리면 김구선생이 피난을 했던 해염현 남북호에 있는 ‘재청별서(載靑別墅)’가 나온다. 별서란 별장을 말하는데 해염현에서 한글로 ‘재청별장’이라 써있다. 이곳에 김구선생의 기념관이 다른 지역의 임시정부와 같이 잘 꾸며져 있다.

이곳은 저보성의 며느리 주가예의 친정집이며, 더운 여름에 김구선생을 모시고 왔던 곳이다. 그곳에서 창문을 열면 남북호가 보인다. 여기서 김구선생은 처녀 뱃사공 주애보를 만난다. 주애보에 대한 내용은 중국의 여류 작가 하련생이 백범 김구선생과 중국 처녀 뱃사공의 사랑을 그린 소설 선월(船月)이 있다.

해염에 또 다른 인연은 최부선생의 표해록에 있다. 해염 출신 장녕(張寧)이 1460년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간 사람이다. 장녕은 조선 선비가 표류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100리가 넘은 항주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나이는 많고 언제 올지 몰라 조카를 남겨두고, 만일 조선 선비가 오면 ‘장녕을 아는가’ 물어보라고 하였다.

최부선생이 항주에 도착하자 그의 조카가 “명나라 사신으로 장녕이란 분이 있었는데, 조선에 가서 황화집(皇華集)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당신은 알고 있소?” 라고 말하자, 최부선생은 “등한강루라는 시를 지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등한강루(登漢江樓) 한강루에 올라

동국에 높은 누각이 있는데,

앞에는 한강 물이 흐르고 있구나.

햇빛은 청작방에 어른거리고,

그림자는 백구주에 떨어지네.

멀리 하늘 끝을 바라보니,

허공에 있어 땅에 뜨려고 하네.

여덟 창으로 바람과 햇빛이 좋은데,

대접이 너무 좋아 다시 머무르고 싶네.

東國有高樓(동국유고루) 樓前漢水流(루전한수류)

光搖靑雀舫(광요청작방) 影落白鷗洲(영락백구주)

望遠天疑盡(망원천의진) 凌虛地欲浮(능허지욕부)

八窓風日好(입창풍일호) 下榻重淹留(하탑중엄류)

이 시를 내려쓰자, 옆에 있던 관리들이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때부터 최부선생을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항주에서 북경까지 경항대운하를 따라 간 최초의 한국인이다. 해염현은 시가지 형성이 잘되어 있지만 아직 시로 승격되지 않고, 시내에 ‘기원(綺園)’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서당(西塘)

천 년 세월을 품은 서당은 강남 수향마을 중에서 삶의 향기가 가장 진하다. 마을 중에서 상업화 손길이 가장 늦게 닿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5천여 명의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어서,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다.

운하를 따라 지붕 달린 회랑이 이어지고, 모세혈관처럼 연결된 수로 위로 예쁜 다리에 좁은 골목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여행자 대부분은 상해와 항주에서 당일치기로 방문한다. 마을이 작아서 3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지만, 하루 이상 머물러야 이곳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풍경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는 운하 위로 새하얀 물안개가 고요하게 드리우고, 낮에는 골목을 탐험하는 관광객들로 명랑해지며, 밤이면 수로를 따라 카페와 식당들이 홍등을 환하게 밝힌다.

서당 고성은 요즘 중국인들에게 화제의 관광지가 되고 있는 곳이다. 소주, 주장, 동리보다 더욱 잘 보존된 유적들과 깨끗한 수하로 유명한 곳이다. 장정의 나무뿌리 조각 예술작품이 300여개 전시되어 있으며, 예술관은 대표적인 건출물 중의 하나이다.

와당진열관은 중국 고대건축물의 기와에 장식으로 만든 조각품을 말한다. 와당은 보존하기 힘들고 역사적 의미가 중요하다. 와당진열관은 보존이 완벽하게 진열되어 있다.

예택(倪宅)은 서당에서의 학문이 깊은 집안의 개인 주택이며, 오복교(五福橋)는 명나라에 건설되였으며 다리길이가 14m이다. 오복교 다리를 걸으면서 사람들에게 축복도 같이 준다는 것이다.

연우장랑(煙雨長廊)은 강변에 인접되여 길이가 877m이며, 위에 지붕이 있는 장랑이다. 취원(醉園)은 명나라에 건설되었으며, 고벽돌로 만든 화단과 강남에서 아주 보기드문 고벽돌로 만든 아치형 다리가 있다.

왕택(王宅)은 청나라 왕씨의 주택으로 조성되었으며 명청시대 민가의 전통건축이다. 종복당(種福堂)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복을 심다는 뜻으로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나중에 자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자손들에가 남긴 조상의 말이다.

오진(烏鎭)

1,300년 역사를 지닌 우전은 경항 대운하 기슭에 위치해 강남 수향의 낭만적인 풍모가 짙게 배어 있다. 상해, 항주, 소주 3대 도시의 교차점에 있어서 일찍부터 방직 수공업이 발달했다. 지형이 평탄하고 강우량이 충분해 쌀농사가 풍년을 이루어, 쌀을 주재료로 한 양조 산업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마을 중심에서 十자 형태로 교차하는 수로를 기준으로 동서남북 4개 구역으로 나뉜다. 볼거리는 옛 주택이 즐비하고, 여행자들이 머물 수 있는 낭만적인 객잔이 운집해 있다. 요즈음 많은 관광객이 몰려 새롭고 전통적으로 보이는 커다란 호텔이 생겼다.

오진에서 눈여겨 볼 것은 다른 수향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가옥 구조다. 부족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수로 쪽으로 목조나 돌기둥을 받쳐있다. 건물이 물 위로 1m 가량 튀어 나와 있어서 마치 수상가옥 같다.

중국 장강 이남의 대부분 물고장과 마찬가지로 오진도 시내 전역에 가로세로 수로가 얽혀 있습니다. 누각이나 목조건물들이 물을 따라 자태를 뽐내고 있고 작은 다리들이 푸른 물위에 모습을 비낀 가운데 나룻배로 쓰이는 오봉선(烏蓬船)이 강에서 여유를 부린다.

이 자그마한 역사도시는 한 폭의 수채화 마냥 특별한 운치는 물론 진실감과 생동감마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천천히 골목을 거닐다 보면 관광객들은 오진의 대분 골목이 구불구불하게 설계되어 있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 골목 양쪽은 대부분 높게 쌓아올린 민가들의 정원 담벽에 덩쿨이 높게 자라고 있다.

/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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