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며칠 있으면 또 다시 8.15 광복절이 다가온다. 우리에게는 흔히 4대 국경일이라 하여 3·1절, 제헌절, 광복절, 그리고 개천절이 있지만, 어느 때부턴가 이들 4대 국경일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상당히 희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제의 잔재가 깨끗이 청산되지 않는 가운데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옅어진 상황에서 3.1절이 국민들 마음속 깊이 다가올리 없을 것이며,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이 위정자들의 자의적 필요와 판단에 따라 짜집기 되어 버린 상황에서 제헌절이 가슴에 뜨겁게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족국가 건립의 신화에 바탕한 개천절이 서양종교와 서양식 사고방식의 범람을 이겨내고 개국의 모티브로서 그 의미를 견지하기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래도 국민들 마음속에 가장 크게 다가서는 국경일로서는 일제 36년의 통치를 벗어나 우리가 광복의 즐거움을 되찾은 것을 기리는 광복절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그 흔적이 바래져 왔고,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로서는 '광복절 특사'에 끼여 출옥의 기쁨을 누리고자하는 재소자들이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 상당한 시일이 흘렀지만, 필자는 우연히 어느해 7월초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그곳에서 보낸 적이 있다. 7월 3일 밤 미국 곳곳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한 가운데 전개되는 불꽃놀이의 장관(壯觀)은 미국인들이 영국의 억압으로부터 쟁취한 독립에 대해 얼마나 자랑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국민을 단결시켜 하나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서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데는, '지도자의 능력'과 함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함께 기념하며 즐기는 '행사'도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러한 것이 미래를 설계하는데 훌륭한 교훈이 될 수 있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8·15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과 그 속에서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과제들을 함께 고민하는 '생각하는 국민'이 되었으면 한다. 지난날 우리를 침략했던 일본은 지금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에 바쁘다. 그들은 안보에 관한한 미국의 보호체제하에 들어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실리를 추구하고 있으며, 국민의 단합을 위해 주변국의 항의도 아랑곳없이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다.

　중국은 굴욕의 지난 1세기를 벗어던지고, 20년 후에는 미국과 어깨를 견주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경제발전에 온 능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들은 '경제발전만이 외교·군사적 영향력의 확대를 가능케 한다'는 진리를 신뢰하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당면한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적어도 50년에서 100년 앞을 내다보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서북공정(西北工程)으로 티벳트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은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동북지역에서 미래의 화근을 미리서 제거하려는 '원모지계'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날만 새면 나타나는 여야간의 싸움판과 철없는 골프놀이가 우리를 질리게 만든다. 이제 우리도 이번 8.15를 계기로 이러한 싸움판이 국가의 먼 장래를 둘러싼 '생산적 논쟁'으로 변했으면 좋겠고, 철없는 골프놀이는 민족의 축제인 추석날 노소간에 함께 어울리는 '자치기 놀이'로 변했으면 좋겠다.

오수열(조선대 교수 · 한국동북아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