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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철학의 계절이다. 모든 것이 떨어지고 스러지는 시간이지만, 바로 그 ‘사라짐’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레미 드 구르몽(1858~1915)의 시 〈낙엽〉은 이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구르몽은 낙엽을 단순한 자연의 현상이 아닌, 인간의 영혼을 스스로 내려놓는 순간으로 보았다.

구르몽은 ‘낙엽을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라고 했다. 이는 생명과 죽음,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이 자기 내면으로 귀향하는 과정의 상징이다. 나뭇잎이 나무를 떠나는 순간은 ‘상실’이 아니라 ‘회귀’다. 나무는 자신을 비워내며 다시 봄을 준비하고, 낙엽은 흙이 되어 생의 순환을 완성한다. 따라서 그의 낙엽은 ‘순환의 미학’을 품고 있다.

시몬의 존재는 이 시의 시적 사유를 더욱 깊게 만든다. 시몬은 구르몽에게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영혼의 거울이었다. 그에게 시몬은 ‘사랑의 대상’이자, ‘잃어버린 자기 자신’이었다. 구르몽이 시몬을 부르는 일은 곧 자신 안의 순수와 대면하는 행위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몬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이상이자, 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자아다. 시몬을 향한 그리움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그리움’이다.

인문학이란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의 역사다. 구르몽의 시가 철학적으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낙엽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문학이 사유의 도구로 기능하는 순간, 시는 단지 언어의 예술을 넘어 인간학(人間學)의 한 형식이 된다. 구르몽의 낙엽은 인간의 유한성을 일깨우면서도, 그 유한성 속에서 다시 생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우리는 종종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쓸쓸함을 느낀다. 그러나 구르몽은 그 쓸쓸함 속에서도 고요한 위안을 찾았다. 그는 낙엽의 소리를 ‘영혼의 울음’이라 부르며, 그 울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진실한 언어라고 했다. 인간의 언어가 때로는 무력해질 때, 자연의 소리가 우리를 대신해 운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인간은 언어 안에서 존재한다”라고 말했듯, 구르몽에게도 시는 존재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낙엽의 소리는 곧 ‘존재의 언어’이며, 그 언어를 듣는 일이 곧 ‘자기 성찰’이다.

가을의 바람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것은 단지 차가운 공기의 흐름이 아니라, 존재를 일깨우는 시간의 목소리다. 구르몽의 낙엽이 우리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것이 생의 허무를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그 허무를 견디는 인간의 품격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떨어지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낙엽처럼, 인간도 결국 새로운 뿌리가 되어 다시 삶을 잉태한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바로 그 ‘순환의 깨달음’에 있다. 문학은 인간의 상처를 덮는 동시에, 그 상처의 의미를 되묻는다. 낙엽을 밟는 감각 속에서 우리는 사유의 무늬를 느끼고, 구르몽의 언어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시는 나뭇잎처럼 떨어져 우리 마음에 내려앉고, 그 자리에 사유의 씨앗이 자란다.

이 가을, 문학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낙엽처럼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이 곧 너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구르몽의 시는 그 길의 초입에서, 철학과 문학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나뭇잎은 떨어지지만, 그 빈 자리에 사유가 채워진다. 그리고 그 사유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성찰한다.

아!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