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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한승헌 공동위원장은 20일 사법개혁 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며 스스로 “이례적”이라고 언급하고, 사개추위 위원들을 모두 단상으로 불러내 함께 머리를 조아렸다. 사법개혁 법안의 입법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과 협력을 당부하는 간곡한 호소였다.

지난해 1월 구성된 사개추위는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의 개혁방안을 토대로 25개 사법개혁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19개 핵심 법안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이날 마지막 회의를 연 사개추위는 오는 12월 31일 해산하게 돼 있어 속이 더 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는 1945년 해방 이후 혼란상황에서 잠정적으로 마련된 후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유지돼 왔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제대로 개혁되지 못한 영역이었다. 사법개혁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1993년부터 이뤄졌으며, 사개추위의 법안은 그 이후 13년만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조계 결단·양보 어렵사리 끌어내 얻은 성과물

특히 사법개혁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라 할 수 있는 법조계의 결단과 양보를 어렵사리 끌어내 얻은 성과물인데 국회에 매여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개추위가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것은 내년 정치 일정과도 관련이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년 초부터 여야 정당이 당내 경선 등 대선 준비에 역량을 쏟게 된다면 사법개혁 법안 처리 가능성은 그만큼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사개추위가 해산되고 국민적 관심마저 떨어질 경우 애써 추진해온 사법개혁이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사개추위의 우려다. 그렇게 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사법개혁 법안 중 대표적인 것은 법학전문대학원, 즉 로스쿨의 도입이다. 이는 현재 법조인 선발 양성 제도인 사법시험과 사업연수원을 폐지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을 통해 법률전문가를 키워내는 획기적인 제도. 그동안 국가 주도의 획일적인 법률가 양성 시스템에서 민간 주도의 자율경쟁에 의해 세계화와 국제화에 부응하는 경쟁력있는 법률가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로스쿨 도입은 지방 로스쿨 인가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에도 일정부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로스쿨 법안은 지난 4월 17일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 심사소위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최종 합의했으나, 이틀 뒤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과 연계시키는 바람에 의결이 무산됐다. 이후 지난 6월 교육위 위원들이 교체됐으며 현재는 법안 심사소위도 구성하지 못한 채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 일반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제를 2012년부터 도입하는 방안 역시 법사위 법안 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국민참여재판제는 사법의 민주화와 국민주권주의를 사법 영역에서 실현하는 것으로, 일반시민이 법정 공방을 보고 유무죄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법률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재판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국민체감 민생법안…정치적 이해관계로 발목 잡혀

또 일반시민의 감시로 재판과정이 투명해지고 전관 예우 등의 폐단이 시정될 수 있으며, 사회 전체적으로 법치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멀고 어려운 재판정이 국민들으로 보다 가깝고 쉽게 다가가는 것이다.

공판중심주의 확립과 불구속 재판원칙 실현을 위한 형사절차 개선도 입법화되지 못한 사법개혁 법안이다. 검찰조서에 의존하는 재판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법정구조와 피고인 신문 개선,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한 공판진행절차의 개선, 피의자 신문 시 변호인 참여, 수사기록 기록제도 도입 등이 공판중심주의 확립을 위한 주된 내용이다.

아울러 영장 단계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 석방 조건 다양화, 긴급체포 및 긴급압수ㆍ수색ㆍ검증 개선 등을 통해 불구속 재판 원칙을 실현하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밖에도 ▲군사법원과 군검찰을 일선 지휘관으로부터 독립시켜 국방부장관 소속으로 해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는 군사법제도 개혁 ▲전관 변호사 및 다수 사건 수임 변호사의 사건 처리 결과를 법조윤리협의회(대법원,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등 공동 참여)에 제출토록 하는 변호사법 개정안 ▲재판기록의 공개 확대 등이 입법화되지 못하고 있다.

사법개혁 법안들은 국민의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민생법안이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을 보다 제도화한 법안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발목 잡혀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