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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째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물고기인 멸치. 멸치( 滅治)는 흔한 생선이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동해안과 서해안에 널리 분포하여 있기 때문이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이 산간벽지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가장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멸치였다. 값이 싸고 흔하여 가난한 시절 멸치조림은 도시락 반찬으로 지겹게 먹던 반찬이기도 했다.

우스개소리로 “ 멸치도 고기냐? ”라고 하면 “ 뼈대 있는 생선”이라고 응대하지만 멸치는 생선이라고 부르기에는 곤란한(?) 존재이지만 엄연히 멸치과에 속하는 바다물고기이다. 우리나라의 남해에서 많이 서식하고 일본 연해에도 분포한다.

김주영의 소설 <멸치〉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다정하게 겸상으로 밥을 먹는 법이 없이 하나 같이 독상으로 밥을 먹는다. 해체된 가족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보여준 소설에서 “멸치는 주재료가 아닌 부재료나 보조재료로 사용되어 변두리나 주변을 상징한다”고 멸치의 특성을 함축하고 있다.

작고 흔하여 멸치의 영양적 가치를 인정하려 않지만 골격과 치아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과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하여 임산부나 발육기의 어린이에게 권장되는 식품이다. 어패류 중 칼슘과 인의의 함량이 가장 많아 고혈압, 골다공증, 빈혈 등의 질병에도 효과가 있다.

멸치의 품질은 재료의 선도와 기름의 함량으로 크게 좌우된다. 멸치는 뽀얀 빛이 나는 것이 질이 좋고, 붉고 검은빛이 나는 것은 선도가 낮은 것으로 잘 부서지고, 지방이 많은 것은 저장 중에 산화되어 냄새가 난다.

싱싱한 생멸치는 회나 조림, 소금구이 등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마른 멸치로 국거리와 조미료, 멸치젓, 멸장 등에 이용한다. 좋은 멸치는 신선한 멸치를 묽은 소금물에 삶아서 말린 것으로 소금물을 이용해야 살이 단단하고 윤기가 난다.

마른 멸치는 굵은 것, 중간 것, 아주 희고 고운 멸치 등이 있다. 몸길이가 13cm에서부터 1cm도 안되는 것도 있다. 멸치 국물의 감침맛은 여러 가지 아미노산의 맛 때문인데 글루타민산의 함량이 많다. 굵은 것은 주로 국 국물이나 장국물로 우려내는데 쓰이고 잔 것과 중간 것은 조림으로 쓰인다.

국물을 낼 때는 머리를 떼고 배 쪽의 검은 내장을 제거한 다음 손질한 멸치를 기름없이 살짝 볶아 비린내를 없앤 다음 찬물에 넣고 끓인다. 그냥 끓이면 씁쓸한 맛이 난다. 이때 멸치와 물의 비율은 5컵당 멸치 10마리쯤이면 적당하다. 끓어오르면서 생기는 거품은 숟가락으로 떠내고, 멸치를 건져내고 양파, 감자 등 다른 재료를 넣어서 끓인다. 그냥 두면 국물도 지저분해지고 비린 맛이 나므로 국물이 엷은 갈색을 띠면 얼른 건져낸다. 잔멸치는 체에 담아 흔들어 잔 부스러기와 잡티를 제거한 다음 프라이팬에 볶는다. 햇볕에 잠깐 말려 찧어 가루를 내서 담아두고 쓰면 낭비가 적다.

전남지방에서 김치를 담는 젓갈로는 멸치젓을 으뜸으로 친다. 생멸치가 많이 잡히는 봄에 멸치를 항아리에 담고 위에 소금을 뿌리고 짚을 돌돌 말아 너무 무겁지 않은 돌로 눌러 놓는다. 가을에 젓국을 달일 때 짚을 가만히 걷어내면 기름기가 거기에 묻어 나온다. 이렇게 담아둔 멸치젓은 전남의 전통발효식품으로 진하고 감칠맛 나는 남도김치의 조미료가 된다.

멸치를 국물을 내거나 조림만 하기는 너무 단조롭다. 잔멸치와 당근 파래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내는 멸치스낵, 멸치와 미역줄기를 버무려 지져낸 멸치전, 멸치와 보리새우, 꽈리고추를 넣고 조린 멸치새우조림, 멸치와 자른 김을 기름에 튀겨 설탕을 뿌린 멸치김튀김, 멸치가루에 표고버섯과 풋고추를 넣어 지진 멸치전도 별미이다. 다양한 멸치요리로 경제적 부담은 줄이면서 식탁을 건강하게 하자.

김정숙 교수 <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 김치발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