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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9일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놓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왜 노 대통령은 임기 1년을 남겨놓은 지금 시점에서 개헌을 제안했을까.

전 세계에서 대통령(중심)제를 실시하고 있는 95개국 중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단임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12개국(12.6%)에 불과하다. 12개국에는 우리나라를 비롯, 필리핀 레바논 페루 코스타리카 멕시코 파라과이 볼리비아 온두라스 파나마 칠레 콜롬비아가 포함된다.

경희대 강효백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는 경향신문 8일자에 기고한 ‘중임제 개헌 서둘러야 하는 이유’에서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것을 벤치마킹하면서도 초강대국 미국을 낳은 통치구조 시스템 중 최고 명품으로 평가받는 중임제는 왜 안 따르는지. 그와 거꾸로 1회성 정부가 펼치는 1회성 정책에 경제가 이리저리 흔들려온 후진국 약소국들 하고 왜 같은 멍에를 쓰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중임제를 채택해야 하는 이유로 △세계적으로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후진국·약소국들임 △중국과 일본의 개헌움직임에 발맞춘 21세기에 맞는 새 틀 필요 △국가적 비극인 레임덕 최소화 △안정적 국정운영과 중간평가가 가능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마주치는 20년만의 적기 등을 들었다.

1987년 개헌의 목적은 군사독재 장기집권 방지

1987년 26년간의 군부독재를 물리친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탄생한 9차 개헌 헌법의 목적은 무엇보다 독재와 장기집권 방지에 있었다. 당시 정치권에선 대통령 임기를 두고 6년 단임제(민정당)와 4년 중임제(통일민주당)로 의견이 갈리었으나 군사독재의 장기집권과 연임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면서 5년 단임제로 타협이 이뤄졌다.

그러나 1987년 이후 4차례의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1997년 여야 간 정권교체와 2002년 국민경선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 정치권력을 창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이 됐다.

세계 정치자유도를 매년 평가하는 미국 프리덤하우스는 2005년 정치적 자유 측정에서 한국을 세계 선진민주국가들과 함께 최상위등급인 1점에 위치시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일정은 대선, 총선, 지방선거의 임기와 선거주기가 서로 달라 재임 대통령은 5년 임기 중에 정권 평가적 성격을 갖는 선거를 3번씩 경험하고, 이렇게 잦은 선거는 정당의 정치행위를 선거에 맞추게 함으로써 정쟁이 일상화·구조화돼 국력 낭비와 국정혼란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1987년 이후 20년 동안 대선, 총선, 지방선거 중 하나도 실시하지 않은 해는 8년(89년, 90년, 93년, 94년, 99년, 01년, 03년, 05년) 뿐이었다.

또 우리나라 단임제의 경우 정권 후반기에 대권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정당정치가 약화돼 5년 단임제로 선출된 대통령마다 대선이 있던 마지막 해에 모두 여당에서 탈당하는 불운을 경험했고 목격해왔다.

1987년 9차 헌법 제정 당시 주요목표였던 독재정권의 장기집권 출현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연임제로의 개헌을 통해 국정의 효율성과 책임성,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21세기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군사독재 경험한 후발민주주의 국가들 단임제 채택 후 연임제로 전환

군사독재를 경험한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우 민주화 초기 민선 정부를 구성할 때 우리나라처럼 단임제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 국가들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숙되면 국정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연임제 또는 중임제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 국가다.

또 대통령 중심제를 실시하고 있는 95개국 중 중동과 아프리카를 제외한 국가규모가 있는 13개국 중 미국 등 12개 국가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주기를 일치키시고 있다. 이에 포함되지 않는 러시아의 경우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시차가 4개월에 불과하다.

7년 연임제를 실시하던 프랑스는 2000년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며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주기를 일치시켰다. 프랑스가 대통령의 임기를 조정한 배경은 잦은 여소야대로 인한 동거정부의 빈발로 국정 비효율성이 국가적 문제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개헌 헌법은 올해 선출되는 대통령부터 적용돼 4월 1차 투표, 5월 2차 투표를 실시한다. 총선은 올 6월 실시된다.

올해 개헌을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통령의 국회의원의 임기만료가 2008년에는 3개월로 좁혀져 정치적 타협이 가장 용이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넘길 경우 차기부터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만료 시점이 점차 벌어져 누군가가 일방적인 양보를 해야만 임기조정 문제가 가능해진다.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시기적으로 촉박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헌법개정에 필요한 절차를 살펴보자.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를 통해 제안할 수 있으며 20일 이상의 공고과정을 거쳐 60일 이내에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제안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경우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국민투표를 통과한 헌법 개정안은 별도의 유예기간 없이 즉시 공포된다.

즉 헌법이 정한 절차를 충분히 따르더라도 개헌을 위한 기한은 3개월이면 충분하며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올 12월 대통령선거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도 개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헌법이 정한 개정절차 따르면 3개월이면 충분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탄생한 현행 헌법의 경우 그해 여야 ‘8인 정치회담’이 구성돼 7월 30일 첫 회의를 시작한 후 한달 후인 8월 31일 개헌 합의에 도달한다. 일주일 뒤인 9월 6일에는 마지막 부칙에까지 합의했다.

이때 합의된 개정안은 국회 개헌특위에서 채택돼 그해 9월 18일 국회 재적의원 272명 중 264명의 서명을 받고 국회에 제출됐다. 이 개정안은 9월 21일 대통령이 공고한 후 10월 12일 국회 재적의원 272명 중 출석 258명, 찬성 254명으로 의결됐다. 이후 10월 27일 국민투표를 실시해 투표율 78.2%, 93.1%의 찬성으로 개헌안이 확정됐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선거공약으로 “4년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에 대한 국민의 뜻을 물어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02년 10월 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2008년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일치되는 것을 계기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원화시켜 잦은 선거로 인한 국력낭비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