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지난해 한국갤럽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 성인 남성 중 38%가 바둑을 둘 줄 아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를 합치면 20.3%로 한국의 인구를 5천만 명으로 잡는다면 우리나라 바둑 인구는 대략 1천만 명이란 단순 계산이 나온다. 이는 그 동안 바둑계가 목소리 높여 온 '1천만 바둑 팬' 주장과 대충 맞아떨어지는 결과다.

역시 바둑은 놀이 문화의 대표주자라는 증거다. 바둑 용어를 우리 생활에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가를 알아보자 바둑 용어 중에는 이미 일상화된 것들이 적지 않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런 용어들은 알고 있을 정도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바둑의 고유 용어들이 정계와 경제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중 몇 개를 골라 정리해 보았다.

(1)포석= 바둑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포석이다. 즉, 전쟁을 앞두고 쌍방 진을 치는 작업인데 흔히 '사전 포석'이니 '장기적 포석'이니 하여 일종의 밑그림 그리기, 앞서 준비하기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2)9단= 단위제도는 바둑만 아니라 태권도, 유도와 같은 무예 쪽도 단위를 채택하고 있다. 정치에서 인용하면 '정치 9단'하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정치인을 표현한다. 그래서 정치계의 거장의 수준에 이른 인물'을 통칭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3)묘수= 좋은 수를 넘어 '기가 막힌 수'를 말한다. 묘수에 대한 유명한 바둑 속담 하나를 소개하면 '묘수 세 번 나오면 바둑 진다'라는 것이 있다. 세상사는 묘수로만 풀리는 것이 아니다. 묘수보다는 정수를 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장고= 오래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신중한 것은 좋으나 지나친 장고는 악수를 낳는다. 다른 격언으로는 '하수의 장고는 숨쉬기 운동에 불과하다'란 말도 있는 만큼 바둑에서도 지나친 장고는 그다지 환영받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바둑계 대표적인 장고 파는 조치훈 9단이 꼽힌다.

(5)자충수= 스스로 망함을 자초하는 수. 자기 돌을 잘못 메워 살아 있는 돌을 죽이는 수다. 한 마디로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수'를 말한다. 정치와 사회에서 많이 활용되는 말이다.

(6)꼼수= '꾀는 수', '꼬시는 수' 즉 정상적인 수순을 비틀어 '꼬았다'고 하여 꼼수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꼼수는 속임수와 유사한 개념으로 '원래는 안 되는 수이나 상대로 하여금 속아넘어가게 만드는 수'란 뜻으로 주로 쓰인다. 두는 사람 쪽에서 보면 통하면 명약이나 잘못되면 독약이 되는 수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프로의 바둑에서도 꼼수는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점.

(7)훈수= 남이 두는 바둑을 옆에서 감 놔라 대추 놔라 참견하는 행위. 예로부터 훈수꾼은 별로 환영을 받아오지 못했건만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훈수꾼이 있어온 것을 보면 훈수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 본능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흔히 바둑은 5급인데 관전은 9단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대표적 훈수꾼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라 하겠다.

(8)초읽기= 초읽기야말로 오리지널 바둑 용어 중의 하나. 공식대국을 무제한으로 둘 수 없기에 만든 시간적 제어장치가 바로 초읽기이다. 초읽기의 기준은 대국마다 다른데 보통 제한시간을 1분 정도 남겨두고 초읽기에 들어가게 된다. 바둑판을 떠나선 '정부의 ○○대책 발표 초읽기' 등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