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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는 뼈아픈 과거가 있다. 하지만 이 과거사가 삶의 지침서로써 항상 뇌리에 박혀있기에 다시는 이런 과오를 범하는 일은 없으리라 굳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20년 전 우리영화를 제작하고 외화를 수입하며 배급까지 하였던 충무로 영화사 경영시절 초창기의 에피소드다.

처음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필자는 아무 생각 없이 아름다운 천국의 이야기를 그린 ‘메이드 인 헤븐’(티모시 휴턴, 켈리 맥길리스 주연·1987년)이라는 영화 속 순백의 하얀 마력에 푹 빠져 1988년 과감히 수입을 단행하였다.

이 영화는 대부분이 천국 이야기로 현실의 이야기 속에도 악(惡)이란 생략되고 모두가 선(善)뿐인 세상을 그린 영화이다.

당시 우리 영화계의 흐름을 보면 모두가 영세업자들로 가까스로 수입한 외화 한편에 사활을 걸고 어떻게 해서든 수입한 한편의 영화로 일확천금을 노려 주머니를 채운 다음 우리 영화를 만들어내야만 했었다. 영화사들은 1년에 분기별로 2편의 방화를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한편의 외국영화 수입쿼터(Quota)를 문화공보부로부터 받게 되었다. 100%에 가깝게 방화를 제작하면 실패했던 시절이었기에 외화를 수입해 상영해야만 현상유지가 가능했었다.

외화 한편에 목을 맨 많은 영화사들의 수입경쟁은 매우 치열했고 극장을 소유한 극장 주(主)들은 배를 내밀며 거드름을 피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흥행사들로부터 ‘메이드 인 헤븐’ 지방 개봉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자의 전성시대’(1975), ‘애마부인’(1982) 이후 말초신경을 자극한 에로틱한 영화들이 1년에도 시리즈로 2회 이상 쏟아져 나왔으며 또한 자극적인 내용들로 가득 찬 볼거리의 흥행요소가 많이 있어도 독특하고 색다른 모습이 아니면 그 중에서도 살아남지 못해 쓰러져 나가는 형국이었다.

여기에 순수하고 지상이나 천국이나 모두가 선(善)으로 가득하고 밝고 아름답게만 그려진 ‘메이드 인 헤븐’이라는 천국이야기가 흥행할 수 없다는 지방흥행사들의 결론들이었다.

그러나 ‘필생즉사 필사즉생’의 강인한 정신으로 무장하며 살았던 필자는 서울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비싼 대관료를 감수하면서 극장을 빌려 비 내리던 토요일 개봉을 했다.

모두의 걱정과는 다르게 여자대학교 부근인지라 연이틀동안 매진을 기록하였고 금방이라도 재벌대열에 합류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꿈도 잠시 개봉 3일차인 월요일부터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더니 개봉 10일도 지나지 않아 간판을 내리자는 극장 측의 제의에 몸둘바 몰라 실의에 빠지기도 했었다.

순수하고 맑고 밝음을 앞세운 영화들이 세파에 찌든 중생들 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경우쯤 되는 비극적 현실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경우이다.

바로 ‘허브’가 똑같은 경우를 겪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개봉 열흘인데 멀티스크린으로 가득 찬 극장가에서 교차상영으로 영화 ‘허브’를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밀어내고 있다. 순수가 버림받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요즈음의 우리들. ‘허브’의 주인공 7살 정신연령보다 못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깊게 반성해 볼 시간이 왔다.

박형균<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