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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가!”

‘차라리 무자식이 상팔자일까’라는 모호한 생각까지 들게 하는 영화가 ‘그놈 목소리’이다. 특히 이 영화는 범인의 목소리가 크게 어필되어 인물중심의 영화에 목소리가 주인공처럼 만들어진 흔치 않은 범죄영화다. 아무튼 생각조차 하기 끔찍한 사건인 지난 1991년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다룬 다큐형식의 극영화 ‘그놈 목소리’가 개봉되어 세간에 화제다.

지난달 26일자 칼럼을 통해서 필자는 ‘로보트 태권V’의 각본을 맡았던 지상학 작가와는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격의 없는 사이라 밝힌 바 있다. 바로 그 지상학 작가 장녀인 지한별양(당시 12세)도 1992년 8월 8일 아파트 단지 내 상가부근에서 20대 여성을 따라나섰다가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처럼 필자의 주변에도 유사한 큰 아픔을 간직하면서 사는 지인이 있기에 ‘그놈 목소리’를 그냥 재미삼아 볼 수가 없었다. 15년이 지난 지한별양의 사건 역시 이형호군 사건처럼 미궁이다. 이런 이유로 ‘그놈 목소리’를 관람하는 순간 필자의 가슴이 흔들리기 시작하여 영화를 보는 동안 착잡한 심정으로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지상학 작가의 모습이 한없이 눈에 떠올라 혼란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은 바로 가족 파괴범이다.

영화를 연출한 박진표 감독은 1992년 SBS-TV ‘그것이 알고 싶다’ 다큐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직접 취재하면서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이후 영화계로 나온 박감독은 ‘죽어도 좋아(2002)’ ‘너는 내 운명(2005)’ 등을 만들어 많은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아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바 있고 방송가에 근무했던 당시 취재했던 이형호군 사건에 항상 마음을 두고 있던 터라 우리 사회가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쉽게 잊거나 용인하지 않도록 그 내용을 영화로 재조명하게 된 것이다.

영화적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구현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그놈 목소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이지만 영화적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관객들의 마음과 시선 모두를 빼앗은 독특한 영화기법으로 꾸며낸 휴먼드라마다.

필자는 이런 수작들을 대할 때면 기분이 너무 좋아 곧잘 흥분하게 되어 입 소문을 여기저기 내면서 영화에 취해 보기도 하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다.

비록 공소시효가 만료된 범죄 사건이라지만 추후 예방차원에서라도 범인을 꼭 잡아 엄한 벌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그래도 이형호군과 지한별양 가족들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두 가족 그리고 개구리소년 가족들에게도 하루 빨리 마음의 평화가 깃들기를 다시 한번 기원해 본다.

박형균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