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도시는 지금 간판의 정글이다. 교통표지와 같은 공공시설물, 건물을 도배하다시피 한 상업 간판,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과 벽보, 보행자의 범위까지 침범한 입간판…. 시민의 눈은 정보 과잉으로 잠시도 쉴 수 없다.

간판은 결국 만인이 만인을 향해 상업적인 메시지만 쏟아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고 말았다.

우리 도시의 간판들은 시각적인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나치게 많을 뿐 아니라 크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똑같은 재료와 형식의 간판들로 평온한 환경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밤이 되면 과도한 발광체를 사용한 네온간판들이 주민들의 시각을 더욱 자극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정보를 토해내도 인간의 시각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간판이 크고 숫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전달 효과가 높은 것은 아니다. 그저 어지럽고 복잡한 것으로 인식된다.

자신의 점포를 부각시키려는 과도한 광고물은 다른 점포의 경쟁심을 부추기게 된다.

결국 과다한 간판은 정보 전달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오히려 도시 문제들을 낳게 되는 것이다. 도시의 간판에는 위계(位階)의 질서가 필요하다. 공공간판은 어느 경우에나 사적 정보보다 우선해야 한다.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상업 간판의 홍수에 묻혀 교통표지와 같은 공공간판은 잘 읽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민의 시선은 간판을 피할 길이 없다. 눈을 감고 길을 걸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리의 표면에 게시된 모든 시각정보들은 강제적인 성격을 띈다. 이런 이유로 자극적인 간판, 과다 정보로 시민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가로환경은 시각공해임과 동시에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국회 공공디자인 문화포럼이 설문조사를 했는데 응답자들은 우리나라 공공시설물 중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요소를 간판과 옥외 광고물이라고 답변했다.

가까운 일본의 도시에는 주민협정제도라는 것이 있다. 주민들이 경관을 아름답게 관리하기로 서로 약속하고 간판에 대한 규율도 자발적으로 지켜나가는 있다. 간판 문제는 관 주도의 통제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민이 함께 풀어 나가고 있는 제도이다.

우리의 도시가 과밀과 과잉정보로 뒤덮인 것은 내 간판이 남의 간판에 이겨야 한다는 이기심과 경쟁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나와 남의 간판이 건물에 잘 어울리고, 이웃 간판과 나란히 공존하며, 도시경관과 조화로울 때 정보전달도 효과적으로 이뤄진다는 인식이 뿌리내려야 한다.

아름다운 선진 도시는 쾌적한 시각 환경을 통해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