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지난 개발독재시대의 국토개발정책은 선택과 집중에 그 기본을 두고 전개되어 왔고,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왜냐하면 몇 푼 되지 않는 투자재원을 여러 곳에 분산 사용하다 보면 아무래도 효율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항에 제철단지가 들어서고, 울산에 자동차단지가 들어서는가 하면 마산, 창원에 수출을 위한 공업단지가 조성되어도 우리는 의례 그러려니 하였고, 전라도는 농업지대이니 맑은 공기 속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것을 천부적 숙명으로 여기며 그다지 불평하지도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인구의 대부분이 몰려있는 수도권과 공업지대인 영남간을 오가는 열차는 원활한 수송을 위하여 복선이 되어야 할 것이고, 우리야 가진 것은 시간뿐이니 단선 완행열차인 상무호에 몸을 싣고 열서너 시간 걸려 서울역에 내려도 그것을 추억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순박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집권한 ‘참여정부’는 무슨 이유인지 ‘국가균형발전책’을 기본 국책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였고, 이후의 모든 국가시책은 ‘분권화’에 맞추어 추진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참여정부의 정책노선은 시세(時勢)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통과 통신의 발달상태를 만끽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난날과 같은 거리개념은 이미 무의미해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와 행정의 중심이 굳이 수도권에 집중되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 대기업의 본사 또한 그곳에 몰려 있어야 할 필요성이 없게 되었다. 더욱이 오늘날 수도권은 가히 인간이 숨쉬고 살수 있을 곳이 못된다는 말이 설득력을 지닐 만큼 인구의 과포화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권의 인구를 분산하는 것은 굳이 지방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도 수도권이 살기 위해서도 필요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 의하면 정부는 국책연구기관 24곳을 신행정 도시 건설이 추진되는 충남 공주, 연기에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한마디로 지역균형발전을 내세운 참여정부의 기존 방침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만일 이 같은 방침이 현실화된다면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은 허울에 그치는 사탕발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하겠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지역균형발전이 200년, 300년을 내다보는 국가의 백년대계인 것인지, 아니면, 몇 년마다 한번씩 다가오는 선거에 활용하기 위한 정략에서 비롯된 것인지 부터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지 않나 싶다. 연구기관이야 말로 광주, 전남지역과 같은 산 좋고 물 좋은 평야지대가 적당하며, 땅값 또한 공주, 연기지역에 비해 이곳이 훨씬 싼 터이니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지역이 경쟁력을 갖춘 곳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공주, 연기지역에는 청와대와 국회 및 대법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행정기관이 이할 예정으로 있어 그것만으로도 몇 십만 인구를 포용하는 중급규모의 도시가 형성되기에 충분하다고 할 때, 여기에 더하여 중요한 국책 연구기관까지 그곳에 집합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하겠다.

연구기관은 다른 행정기관과는 달리 업무의 연계성이 그다지 크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비슷한 성격을 지닌 연구기관을 몇 곳씩 모아서 개발정도가 낮은 지역에 분산 배치하는 것이 지역균형발전에 훨씬 긍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예부터 군사도시 가운데 하나로 불리 워 온 광주 인근에 국방대학교와 종합행정학교 그리고 국방연구원 등이 이전해 온다면 장성의 상무대와 업무의 효율성 면에서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더욱이 지역 간 민감한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이러한 사안의 발표를 4?30 재보궐선거를 며칠 남겨두지 않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발표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없지 않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는 점에서 더욱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모름지기 미래의 국토 발전을 디자인하는 이러한 사안은 눈앞을 보지 말고 100년 뒤를 보는 자세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오수열 (논설위원 .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