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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3월3일은 지났지만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산과 들에는 봄기운이 가득할 때이다. 새로 돋아난 푸른 풀을 밟고 꽃놀이를 즐겼는데 이를 답청이라 하고 이날을 답청절(踏靑節)이라 했다.

삼짇날은 옛날 서당의 개접(開接)으로 개학식인 셈이다. 선비와 서생들은 술과 안주를 장만하여 들이나 정자에 나아가 시를 짓고 즐기는 날이었다. 여자들도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만발한 진달래꽃을 머리에 꽂고 하루를 즐겼다. 모처럼 고단한 시집살이의 굴레에서 벗어나 꽃달임(화전놀이)하는 하루는 일년 중 가장 즐거운 날의 하나였다.

진달래는 부드럽고 가냘픈 꽃을 피우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나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 진달래는 두견이(소쩍새)가 울기 시작할 무렵 꽃이 피어 두견화(杜鵑花)라 불렀다 하고, 피를 토하고 우는 두견새의 피로 물들어 두견화는 붉디붉다고 했다.

한민족에게 진달래꽃은 한 많은 연인의 슬픈 사랑과 이별의 꽃이며 운명을 같이해온 한국의 꽃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꽃요리를 즐겼다. 갖가지 꽃이 만발한 봄이면 진달래 화전, 아카시아꽃떡, 들깨꽃송이튀김, 제비꽃튀김 등을 만들어 먹었다.

꽃요리는 색, 향, 맛, 모양이 모두 최상이다. 꽃잎에 있는 꽃가루는 식물의 생식세포를 가지고 있어 단백질과 다양한 종류의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어 영양이 풍부하다.

그 양이 뿌리, 줄기, 잎보다 꽃에 몇 배 더 많아 인체의 면역기능을 높이고, 노화를 지연케 하는 등의 작용을 한다. 고대 황후나 비빈, 반가의 규수가 너나 할 것 없이 꽃을 식용하여 민간에서도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삼짇날의 절식으로는 진달래화전, 진달래주, 진달래화채가 있다. 화전(花煎)이란 꽃지짐을 말하며 풍류음식이면서 건강에 좋은 약이 되는 음식이다.

찹쌀은 온화한 성질로 속을 덥혀 주고 내장 기능 보강, 소화촉진, 피로회복, 신체활력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찹쌀반죽 위에 고운 꽃을 얹고 참기름으로 지져 꿀을 찍어 먹는다. 향긋한 꽃내음이 코끝을 자극하고 입안에 씹히는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고, 은은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은 다른 음식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멋과 묘미가 있다.

꽃을 먹음으로써 자연의 미각을 느끼고,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며 봄을 몸 안에 받아 드렸다고 기뻐했다. 그래서 진달래화전은 봄의 향취를 즐길 수 있는 풍류 떡이다

백호(白湖) 임제(林梯)는 “시냇가 돌을 모아 솥뚜껑을 걸고/ 흰가루 참기름에 진달래 꽃전 붙여 / 젓가락 집어드니 /가득한 한 해의 봄빛 향기/뱃속에 스며든다”고 하여 향기가 뱃속까지 봄빛을 전하는 진달래화전을 읊었다.

진달래주(杜鵑酒)는 술독에 누룩과 고두밥, 꽃술을 뗀 진달래꽃과 뿌리를 섞어 한 켜씩 켜켜로 놓고 밀봉하여 어둡고 찬 곳에 둔다.

2주정도 지나면 사랑스러운 붉은 빛깔의 향기있는 술이 된다. 진달래화채는 진달래꽃에 녹말을 입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오미자국에 띄운다. 진달래꽃은 관절염, 신경통, 담 결리는 민간요법의 약으로도 쓰였다.

진달래꽃으로 만든 꽃방망이는 여의화장(如意花杖)이라 하여 이것으로 서생(書生)의 머리를 치면 과거에 붙고 기생의 등을 치면 정을 준다고 했다.

시집 장가 못 가고 죽은 무덤에 진달래꽃무덤을 만들어 주던 남도산촌의 아름다운 민속도 잊혀지고 있다.

진달래 꽃말은 사랑의 기쁨, 사랑의 절제이다. 밤마다 이산 저산 ‘울음의 그네를 타는’ 소쩍새의 한(恨)이 한을 넘어 기쁨이 되는 날을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소생할 수 있는 계절을 사는 것만으로 삶은 아름답다.

김정숙<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과 교수>

2004. 4.16. 대한일보 " 김정숙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