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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부산영화제 기간에 입장권을 간신히 구해서 보았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예술영화 전용관인 광주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제작 지원금을 받아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 두 남자가 서울에서 강원도 낙산까지 여행하는 과정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적과의 동행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설정을 통해 펼쳐진다. 가볍게 보이기 쉬운 코믹영화지만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다.

수 십 미터 낭떠러지 밑에 펼쳐지는 S자 모양의 산을 오르는 차도(車道)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한참동안 이어진다.

이 장면은 뱀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힘들고 지친 세상사를 비유해 나타낸다. 그리고 해안가 다랑이 논처럼 생긴 지그재그 산길을 넘어가는 모습도 어렵게 세상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고통을 묘사한 것이다.

이런 장면 하나 하나가 바로 영상언어이다. 입으로 소통하는 언어보다, 활자매체의 글보다, 영상언어의 가치가 더욱 크게 나타난다. 즉 영상을 문화산업의 기둥으로 여긴다.

주인공(박광정)은 택시를 운전하는 아내의 정부(정보석)가 모는 택시를 길에서 세운다. 그 뒤 아내가 있는 낙산으로 찾아가는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된다.

손님이 누군 줄도 모르고 함께 하게된 택시운전사와 살인까지 결심하고 승객으로 가장한 주인공의 만남. 이들 두 사람의 인물설정부터 색다르다.

보통 다른 영화의 경우에는 주인공을 무능하고 소심하며 연약한 소시민을 주인공을 설정하고, 바람이 난 아내의 정부는 돈이 많거나 혹 건강한 체구를 지닌 제비족의 모습처럼 번지르르한 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엉뚱하게도 입만 살아 떠벌리는 택시기사를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설정했다. 즉 관객들의 상상을 뒤엎는 설정인 것이다.

또한 어색한 동행은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타고 가던 택시가 고산지대에서 고장이 나게 되고 두 사람은 산길을 차를 밀면서 가게 된다. 그 와중에 수십 개의 수박들이 산길 위에서 굴러 떨어져 깨지며 도로 전체가 깨진 수박으로 뒤덮인다.

이런 장면은 인간군상들의 표리부동한 양면성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수박의 겉과 속을 보여줌으로써 양면성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부여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물론 이 영화를 통해 해외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광주출신 연기자 박광정의 개성 넘치는 연기를 화면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다. 필자는 좀처럼 영화를 두 번 보지 않지만 나 자신의 불문률을 깨고 극장을 찾게 만드는 영화다.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경쟁부문 초청을 시작으로 세계 유수 영화제의 초청이 줄을 잇고 있으며 최근 폐막한 세르비아의 벨그라드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제 사상 최다 관객 수를 동원했다.

박형균<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