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강행복은 자연의 속울음을 찍어내는 판화가다. 자연의 속울음은 깊고 아득해 귀에 닿지 않는다.

마음밭에 꽃잎지듯 마음에 내린다. 꽃잎 받듯 자연의 속울음 듣는, 마음귀 여는 일이 명상이다.

그가 명상판화가라는 명패를 세상에 내건 지는 20년쯤 된다.

마음밭에 들어앉아 자연의 현絃을 켜기 20년. 장판때도 어지간히 묻었건만 명상 속에서는 잃은 것, 얻은 것도 없다.

그저 세월만 뒤뜰의 우물처럼 홀로 깊었다.

강행복과 명상과의 만남은 극적이지 않다.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꽃 피고 바람불고 있었다. 아등바등 살 때는 꽃이 보이지 않았고, 바람소리 들리지 않았다. 세속의 욕망에 걷어채여 넘어졌을 때 문득 정신이 개이면서 관심이 정상적으로 변속 되었다.

비로소 꽃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바람소리 들렸다. 하늘이 두쪽이 났다느니, 죽었다 살아났다느니 하는 등의 극적 상황은 상근기에게나 있을 법한 일. 그저 욕망에 뒷통수를 얻어맞고 쓰러져보니 그리운 자연의 침묵이 곁에 다가와 있었다.

이제 제대로 꽃이 보이고 바람소리 들렸다.

홍대 미대를 졸업하고 세속에서 관심의 쏠림현상을 유도하며 하루하루 볶이는 콩처럼 튀며 살았다. 물은 백도가 넘으면 끊기 시작하고 끊으면 넘치는 법. 사는 일에 지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싫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고만고만한 스토리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명상판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특별한 연고가 없는데도 마음에 끌려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수행과 예술을 하나로 깍지 끼워 본격적으로 판화의 길에 매달렸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일이 일사천리로 달려나갔다.

운명이란 이렇듯 자연스러운 것. 오래전부터 해왔던 일처럼 전혀 무리가 없었다. 전생에도 수행자였던 듯, 물빛같은 칼을 들고 자연이라는 우주의 뜨락에 앉아 명상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업해나가면서 홍대그룹전이나 외국초대전 등의 전시에 더러 참여하기는 했지만 외부적인 일은 극도로 자제했다. 황폐해진 내면을 가꾸는 일에 온통 마음이 쓰였다. 명상이란 마음에 집중해 그 안의 본래면목을 드러내는 일. 그렇게 내면에 집중해 고요한 마음밭에서 자연과 노닐었다.

그런 고요의 찌꺼기들을 주워모아다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갖고 있다. ‘나를 찾아 안으로 걷네’라는 두서를 달았다. 허세를 버리고 내 안의 참나를 찾아 당당히 만나자는 뜻이다. 왜 조명 반짝이는 시선의 복판에서 전시회를 갖지 않고 고요한 산사를 택했느냐고 묻자 ‘그저 송광사의 전시회가 다가왔을 뿐’이란다. 명상판화가다운 대답이다. 이번 송광사 전시회는 송광사 선원의 해제날인 8. 27일까지다. 그는 언제부턴가 송광사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작업을 송광사 편집실에서 해냈다.

송광사가 국제선원인 관계로 외국인이 많이 다녀가는데 특히 외국인들이 그의 선적禪的 내면에 감탄을 쏟고 간다. 내내 찬사의 도가니다.

그는 오늘도 집중의 갈 끝을 벼려 미망을 베어낸다. 밤새 사각사각 속진은 베어져 적막 위에 쌓인다. 속진俗塵을 털어내고 마음밭을 눕혀 프레스를 돌리면 ‘참나’는 그곳에서 피어난다. 벼리었던 고요의 칼날은 녹아버리고 정신은 하얗게 침전된다. 명상이 별건가, 꽃 피면 꽃을 보는 것이 명상이요, 달 뜨면 달을 보는 것이 명상인 것을. 미묘현통이 무심인의 칼 끝에서 피어나네. 달의 현이 울고 있네. 이 소리가 들리는가? 악!

김현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