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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경제가 심상치 않다. 정부 스스로가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던 4%대의 성장을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금년도 1/4분기 성장률이 2.7%에 그쳤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낙관론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있을 때에는 정부는 우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하고, 그 대처 방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전문가들의 광범위한 자문을 구하되 중구난방(衆口難防)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참여정부에 들어와 기존의 낡고 폐쇄적 관행들이 상당부분 시정되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 현상들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심각한 병폐는 국정의 논의구조가 중구난방을 연상케 할 만큼 지나치게 비체계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하여 논의의 폭을 넓히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지만, 집행부서와 자문기구의 혼재현상 속에서 종종 국정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참여정부가 가장 중요한 국정방향으로 설정한 지역균형발전책만 하더라도 도대체 지방을 발전시킬 의지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각종 선거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어 전면에 내세웠다가 수도권의 반발 등으로 오히려 불리할 것 같아지자 슬며시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는 지역의 발전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가늠하여 지금까지 소외 받았던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음선거를 의식하여 정치색이 개입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이러한 분권화라면 차라리 지금처럼 수도권에 두는 것만도 못할 것이다. 대학 입시를 둘러싼 교육정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대학에 자율권을 준다는 것인지, 아니면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인지 도대체 분명하지가 않다. 지금까지 교육정책의 혼선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고통을 겪어야만 했는가.

참여정부라면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열고 국민들의 바람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한 다음, 해결책을 마련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할 터인데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를 못하고 있다.

정책혼선의 압권으로는 무어라 해도 대, 미 관계를 중심으로 한 대외정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 미 관계에서 외교적 자주성 추구가 기본 노선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안보현실을 감안하여 한. 미 동맹관계를 지속시키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주성 추구가 우선이라면, 그 필요성에 대해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한 다음 우선적으로 경제의 대외의존도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우리경제의 대외의존도가 60%가 넘는 상황에서 세계의 패권국가인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탈 미국화를 통하여 외교적 자주성을 높이고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에너지 덜 쓰기 운동을 바로 전개하여 원유 수입량을 줄이고, 무역 규모를 줄여 자급자족형 경제체제로 전환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그러할 자신이 있는가. 학문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이상(理想)을 추구해야 훌륭한 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학자가 현실적이 되면 아마도 ‘사이비 학자’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특히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만약 그들이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상만을 추구한다면 국정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토론의 활성화와 논의구조의 개방화를 위하여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각종 위원회의 난립이 집행기구에 권한을 침해함으로서 오히려 책임의 혼선과 비능률을 가져온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더욱이 각종 위원회에서 정책입안에 필요한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 비리가 발생하고 있다면 이는 참여정부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는 현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지금 참여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책의 노선이 좌든, 우든 분명한 노선을 견지함으로서, 국민들이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오수열(논설위원. 조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