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천도교 중앙총부는 지난 2003년 12월 16일 낮 12시 장흥 석대벌 공설운동장 앞 동학농민혁명 위령탑에서 동학혁명군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식을 개최했다.

장흥군은 109년 전 동학혁명군이 최후의 격전을 벌인 곳으로 위령탑은 1991년 장흥 주민들의 정성으로 건립됐다.

천도교는 지난 2000년부터 최후 전투일인 이날 천도교의절에 따라 위령식을 봉행 해왔다.

1894년 거사된 동학농민혁명은 9월 13일 삼례에서 2차 기포를 단행한 전봉준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패하자 남으로 밀려 그 해 12월 4일 패주한 동학농민군과 합세하여 벽사역과 12월 5일 장흥부를 점령하여 장흥부사와 수성 장졸 96명이 희생당하였다.

강진현과 병영성까지 점령하였으나, 12월 15일 마침내 경군과 일본군의 신무기에 눌려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였다.

이 농민항쟁의 정신은 이후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승화되었다.

장흥은 이래서 예로부터 의향과 문향으로 불리워왔다.

특히 현재 한국 현대문학의 3걸로 일컬어지는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은 바로 고향이 장흥이다. 이런 동학장흥을 잊지 않고 송기숙은 <녹두장군>을 한승원은 <동학제>라는 대장편을 남겼다.

……용천검 드는 이 칼을 /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 떨쳐 입고 / 이 칼 저 칼 넌즛 들어 호호망망 넓은 천지 / 일신으로 비켜서서 칼노래 한 곡조를 / 시호시호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 칼은 /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 우주에 덮여있네. 만고명장 어디 있나. / 장부당전무장사(丈夫當前無壯士)라. 좋을씨고 좋을씨고 / 이내 신명 좋을씨고……

-한승원의 <동학제>에서-

‘검가’는 개인의 도의 실천과 십만 대군의 응집력 과시를 위해 불려졌다. 한승원의 소설 <동학제>에서는 도인들의 정신무장과 개벽세상으로 열려질 미래에 대한 기대, 단합되는 힘 등을 보여줄 때 불려지고, 무명의 나뭇꾼에서 동학도인의 집단적 모임에 이르기까지 정신 통일의 주술로도 쓰이고 있다.

기존의 ‘검가’에 대한 문자적 예술은 소설에서 나타나듯이 동학의 상무(尙武) 문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검가’부르기와 관련지어 나타난다. ‘검가’는 ‘검결’이라고도 부르며, 검무라는 춤동작과 직결되어 동학의 의식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노래다. 이는 동학의 종교적 의식의 하나로서 칼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동학이 지향하는 후천개벽의 새로운 사상을 위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나서겠다는 일련의 의지를 드러낸 노래다.

‘검가’는 종교적 성취감의 극대화를 보다 극적으로, 시천주의 정신, 나아가 이러한 정신의 고양된 상태를 매우 상징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나아가 보다 능동적인 모습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개벽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개벽사상은 동학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인 보국안민, 광제창생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요, 동시에 근대적 각성에 근거한 동귀일체의 세상을 열어가고자 하는 모습의 기초라 할 수 있다.

전 5부 12권으로 완간된 <녹두장군>은 10여 년에 걸친 현지 답사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다섯 번을 수정·퇴고한 송기숙의 첫 대하역사소설. 외세의 압력이 가중되고 경제의 파탄이 예고되는 19세기말 피폐한 민족현실 속에서 봉건관료와 토호층의 수탈을 거부하며 1894년의 혁명적 전쟁(갑오동학농민전쟁)으로 뛰어드는 농민들의 전형을 작가는 풍부한 민중 언어와 현재적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1981년 해직교수로 처음 연재를 시작하여 작가가 혼신의 정열을 쏟아 완성한 역작으로, 농민전쟁의 전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면서 농민군의 이름난 지도자들은 물론 이름 없는 민중이 어떤 배경에서 농민전쟁에 뛰어들었고 새로운 사상을 실현하려 힘써 싸웠던가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만큼 이 작품이 제시하는 새로운 사실들과 역사 해석은 주목할 의의를 가진다.

1892년 동학 접주들이 선운사 도솔암 미륵불에서 비결(秘訣)을 꺼내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은 그 해 11월의 교조신원 운동, 1893년 2월 서울에서의 복합상소와 3월의 보은집회, 1894년 1월 고부군수 조병갑의 물세 강제징수로 인한 고부민란, 3월의 1차 봉기, 4월 전주 입성과 전주화약(황토재 전투와 황룡강 전투), 집강소 설치와 10월 2차 봉기, 11월초 우금고개에서의 패배에 이르기까지 동학농민전쟁의 전과정과 거기서 일어난 사건들을 포괄한다. 이 작품으로서 100년 전 타올랐던 근대를 향한 거대한 움직임인 농민전쟁의 전모가 비로소 우리 문학사에 알찬 문학적 결실로 새겨지게 되었는바, 당시 농민의 생활사와 전쟁 장면, 대중집회의 모습 등도 생생하게 복원되어 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한승원의 소설 <동학제>는 여러 면에서 <녹두장군>과 비교된다. 우선 두 소설이 모두 동학농민전쟁의 전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두장군>이 동학을 전면적으로 다루고자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동학농민전쟁의 사실들을 거의 다 포괄하려 하고 있음에 비해 <동학제>는 처음부터 이를 거부하고 있다.

<동학제>의 중심은 농민이 아니라 어민들이다. 장흥이라는 역말에서 어민들이 벌였던 투쟁이 이 소설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한승원은 동학세력들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3·1 봉기 때 봉기가 일어나지 못하였던 지역인 장흥을 중심으로 해서, 전봉준과 농민들이 중심이 되었던 동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거부하고, 어민들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그려내겠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고향의 역사를 그리는 것이기도 하다.

<동학제>에서 본질적인 것은 사람들 사이의 애증(愛憎)이다. 이 인한에 대한 별님의 애정, 별님을 가운데 둔 우암과 지억보의 애정. 그리고 부모형제간의 애증. 이러한 애증은 그 인물들이 살아가는 조건이 아니라, 바로 이유이다. 오히려 역사가 이들 애증의 조건일 뿐이다.

어민들뿐만 아니라 지배계급 하층에 속하는 인물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소설의 중심에 서있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애증으로 끈끈하게 얽혀 있는 사람들이다. 결국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 그것도 본능적인 애정이 인간 삶의 본질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는 재미있다. 특히 동학군의 한 사람으로서 같은 동학군에게 아내를 잃어버린 지억보 같은 인물,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애증이 결합된, 거의 자기분열에까지 이르는, 그리고 결국 파멸하는 인물의 모습은 그 자체로서는 흥미롭다. 이 소설이 읽힐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지억보 같은 인물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억보만으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고, 더욱이 '역사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장흥’은 무엇일까. 또 ‘동학’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무엇일까. ‘장흥’과 ‘동학’은 인간 본성이 발현되는 장소이며, 상황이다. 탐학한 계층에 대한 분노도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동학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동학은 한편으로는 평등을 설파하는 사상으로서 나타나지만,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신비한 주문을 가진 종교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어느 쪽이라고 해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애증의 문제를 벗어나는 모든 것은 소설 속에서 부차화된다.

비록 전봉준과 이방언이 동학운동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 의견의 대립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것은 이 소설의 본질적인 측면에는 전혀 닿아 있지 못하다. 따라서 전봉준이나 김개남 같은 인물들, 엄연히 동학운동의 중심에 서있던 인물들의 형상화는 단순화된다. 기실 이 소설에서 어민들이라는 것도 다른 모든 사항들과 마찬가지로 조건일 뿐이다. 이러한 조건은 그들의 행동반경을 제약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인물들의 직업을 규정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제약과 규정이 본질적으로 삶의 방식에 관여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녹두장군>에서 송기숙이 관심을 두었던 문제들, 예컨대, 당대 사회에 존재했던 역사적 힘들이, 개화세력, 수구세력, 그리고 ‘동학'으로 분출되어 나왔던 민중들의 힘이 어떤 방식으로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가, ‘동학’의 실패가 이후의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문제들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동학제>에는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추동하는 보편적인 힘으로서의 인간 본능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은 역사 속에서 행위하지 않는다. 아니 이들의 삶은 역사를 구성하지 않는다. 역사적 힘이라는 것이 인간 외적으로 존재하고, 이들은 그 역사의 힘에 이끌려가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들에게는 시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이다.

두 작가의 동학에 관한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장흥의 동학연원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 많은 서평과 전문가들의 분석을 도움 받아 찾아가는 ‘장흥여행’은 곧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 책 속에 길이 있다.

박주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