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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시대』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제17대 대통령선거(大選)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의 영광을 안은 채 막을 내렸다.

역대 어느 대선이든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 선거가 있을까만, 특히 이번 17대 대선은 선거초반부터 지난 8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되어온 민주화세력이 패배하고, ‘실용’을 표방한 보수야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어온 까닭에 ‘과연 그것이 현실화 될까’하는 점 때문에 더욱 관심이 증폭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이러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과는 달리 유난히도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원래 선거란 그 결과가 예측이 불가능할 만큼 접전양상을 보일 때 관심이 높아지는 법인데, 이번 17대 대선은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 단 한차례의 지지율 변동이 없는 가운데 이명박 후보의 독주로 끝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명박 후보에게도 도곡동 땅 사건, 자녀위장전입사건, BBK사건 등 몇 차례의 크고 작은 위기가 없지 않았는데도, 국민들의 지지율은 좀처럼 이명박 후보를 떠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이회창 전 총재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상황에서도 12월 19일의 투표에서 이명박 후보는 전체 투표수 가운데 과반수에 육박한 48.68%에 해당되는 11,492,389표를 얻어 당선 되었다.

반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대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전체 투표인수 가운데 26.14%에 불과한 6,174,681표를 획득하는데 그쳐 이명박 후보는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커다란 득표 차로 당선되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국민들로 하여금 집권여당에 등을 돌리고 야당에 몰표를 던지도록 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첫째, 지난 5년간 참여정부가 보여준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정치란 그 구성원들에게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안전을 도모해 주는 것(足食足兵)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설파한바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 5년은 이와 같은 정치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5년 내내 경제는 회복되지 못하였고, 북한에 적지 않는 인도적 지원이 제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계속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60년간 안보의 기축이 되어 온 한. 미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으며 한, 중 관계 또한 경제관계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등으로 국민들에게는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둘째, 지난 5년간 참여정부의 최대 공적으로 꼽혀온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 모습마저도 임기 말에 불거지기 시작한 측근들의 잇단 비리 의혹으로 말미암아 빛이 바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여온 분권화, 특히 지역균형발전정책도 그 주요사업들이 임기 말에야 첫 삽을 뜨게 되는 등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들이 집권여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확대시킨 반면, 긍정적 인식은 확산되지 못한 가운데 대선이 치러질 수밖에 없게 한 것이다.

물론 과거의 권위주의적 독재정권 같으면 언론을 통제하고, 권력기관을 동원해서라도 여론을 조작했을 것이며 심지어는 투, 개표과정에서의 부정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어떻게든 정권재창출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화하였고, 또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란 점에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셋째, 이른바 범여권으로 불리 운 집권층의 지지기반이 선거를 앞두고서도 단일화되지 못한 채 분열된 것 또한 국민들의 마음이 집권당을 외면하는데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물론 산술적으로 보면 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와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 그리고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득표한 숫자를 모두 합하여도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 통합의 실효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통합이 가져올 시너지 효과를 감안한다면 만약 대선을 앞두고 범여권이 통합했더라면 승리까지는 몰라도 완패는 면했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여권은 통합되지 못했고 선거는 완패로 끝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제17대 대선에서 나타난 표심은 우리의 정치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민들은 우리의 정치가 '변화’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에 이르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는 생산보다는 분배에 치중하였고, 국가안보 보다는 남북관계의 긴밀화를 도모하였으며 외교적으로는 미. 일 관계보다는 중국에 치중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국민들은 보다 온건하고 실용적이며 생산의 증대를 통한 복지의 확대를 도모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주요국 간에 보다 균형 잡힌 외교를 요구하고 있는가 하면 남북관계 또한 우리의 지원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는 방향으로 도모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국가에서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의 마음은 선거에서의 투표를 통해 표출된다. 17대 대선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그들의 정책적 노선을 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국민들은 4월 9일 치러질 제 18대 총선을 통하여 다시 한번 향후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구체적 의사표시를 하게 될 것인데, 그것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