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여론은 입법자보다 더 강하며 모세의 십계명만큼 강하다. 뿐만아니라 여론이란 신문이나 TV가 아니고 선거 결과이다. 한데 1674년 2월, 현종의 어머니 인선왕후가 사망하자 정국이 흐려졌다.

왕후의 시어머니인 자의대비(인조의 두번째 부인)가 며느리 상(喪)을 당해 상복을 몇개월 입어야 하느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오늘날 상복이 정치현안으로 된다면 웃을 일이지만 당시 예(禮)는 헌법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백성의 여론은 알 수 없고, 예조는 1년으로 정했지만 정승들의 반대로 9개월로 줄였다. 현종은 의아해 했다. “왜 이리 금방 바뀌는가.” 임금의 관심은 정국에 파란을 일으켰다. 역사는 이를 2차 예송논쟁(禮訟論爭)이라 부른다.

현종은 1년으로 정리했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논쟁은 15년 전 1차 예송논쟁이 벌어진 효종 사망 때로 달려갔다. 당시에도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상복이 문제가 됐다. 효종이 왕이지만 소현세자의 동생이라는게 문제였다. ‘왕’을 강조하면 3년, ‘동생’을 강조하면 1년 사옥을 입어야 했다. 당대 최고 성리학자였던 서인(西人) 이조판서 송시열은 1년을 건의했다.

그러나 남인(南人)은 3년을 요구했다. 이때 막 즉위한 현종은 1년을 따랐지만 그 과정에서 송시열이 체이부정(體而不正)이라 한 말이 불씨로 남았다.

효종이 몸은 아버지를 이었으나 적장자는 아니다’라고 한 것을 남인들은 ‘효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역적의 발언’으로 몰았다.

윤선도는 상소까지 올렸다. 이를 ‘서인타도’ 음모로 본 서인은 윤선도를 죽이려 들었다. 현종이 집권 서인의 편을 들어 남인은 패했고 윤선도는 귀양갔다. 2차 예송논쟁에는 남인의 이런 시퍼런 원한이 깔려 있었다.

남인은 죽을 힘을 다해 과거를 파냈다. 현종도 “당시 결정은 잘못됐다.”고 손을 들어줬다.

서인들은 줄줄이 귀양갔고 남인 정권이 들어섰다. 파장은 계속돼 정쟁은 꼬리를 물었고 뒤를 이은 숙종 시대의 정치권은 보복의 피로 점철됐다. 소장파 역사학자 이덕일은 “조선 정치가 공생에서 살육으로 치닫게 된 계기가 예송논쟁”이라면서 “수십년 전 일을 파내 사상 논쟁으로 몰고가는 파행적 정치행태”라고 개탄한다.

이 사상 논쟁을 요즘 정치용어로 치면 남과 북의 사상논쟁이요, 여·야 정치권의 우파 진보 또는 좌파의 이념논쟁이요, 과거사 논쟁쯤 될 것이다.

오늘날 논쟁의 취지와 양상은 조선때와는 물론 다르다.

그러나 최근 18대 총선에 앞서 민주당과 한나라 당 공천에서 살생부 의혹이 불거지고, 손학규 승, 정동영 패, 친 박근혜 계가 벌이는 예각의 대립을 보면 예송논쟁 때의 살벌함이 어른거린다. 잘못된 정치는 역사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그릇된 정치가 수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또다시 되풀이 돼서는 결단코 안된다. 그런데 요즘들어서도 불편 부당·균형이 깨지는 일들이 쏟아지면서 새로운 단어가 나오고 이명박 정부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이들이 적잖다.

장·차관 등 주요 자리에 호남사람들이 철저히 배제되면서 그 옛날 나라를 망친 사색당쟁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최소한의 지역 여론 창구조차 막혔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역대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차별이라는 탄식과 함께 ‘니네들끼리 다 해먹어라’는 등의 분노섞인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통치자 고유의 권한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세월 ‘차별대우’를 감내 해와 왠만큼 내성이 생겼을 법한 호남인들이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고개를 저을 정도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운석 <시인. 남발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