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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하면 김덕령 장군이 떠오른다. 하지만 전설에 의하면 김덕령의 부친은 딸을 먼저 낳고 덕령을 낳았는데 둘 다 장사였지만 누이의 용력이 덕령을 능가했다.

덕령이 힘자랑을 너무 하고 다녀서 누이가 항상 근심하며 자중하라고 타일렀으나 덕령이 듣지 않았다.

씨름판에서 덕령을 당할 자가 없자 자만해 있는 걸 알고 누이가 남장한 채 나가 덕령을 이겼다. 그러자 덕령은 세상에서 자기보다 힘센 이가 있다고 좌절하였다. 누이는 좌절하는 동생을 보지 못해 목숨 건 내기를 자청해 일부러 져주고 동생에게 죽임을 당했다.

실지 옛날 세상에선 여성의 힘은 숨겨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런 현실에 불만을 품은 민중은 ‘오누이 힘내기 설화’를 만들었다. 옛날 홀어머니가 힘이 장사인 아들 딸과 함께 살았는데, 좁은 집에서 함께 살 수 없다며 내기에서 지는 사람이 죽기로 하였다.

오빠가 하루 내에 쇠나막신을 신고 서울까지 갔다 오는 사이 누이는 성을 쌓기로 했는데, 오빠보다 힘이 센 누이가 이기려 하자 어머니는 딸에게 뜨거운 팥죽을 갖다 주어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 오빠가 돌아왔다.

내기에 진 누이는 자살했고, 부정한 방법으로 이긴 것을 알게 된 오빠도 자살했다. 그러자 어머니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면서 자살했다. 쌓다 만 성이 남아 있는 곳에 이 설화가 전한다.

김덕령 누이 등의 져주기 말고 내기의 종류도 다양해서 성쌓기, 동산쌓기, 보(洑)막기, 다리놓기, 절짓기 등으로 다양한데 항상 누이가 더 힘든 일을 맡으면서도 오빠를 앞선다는 공통점이 있다.

임란 때 반란을 일으킨 이몽학도 이 설화와 관련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몽학의 누이는 동생이 역적이 될 것을 우려해 여러가지로 충고를 했으나 그는 도리어 어머니와 짜고 누이를 죽이고 말았다.

임란 도중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러 갔던 김덕령은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무고를 받고 서울로 끌려와 옥사했다. 전북 부안을 비롯한 몇 곳의 ‘거석리 설화’도 여성 장사 이야기다. 한 여성이 큰 돌을 이 마을 입구까지 가져와서 부리고 갔는데, 마을 청년들이 나서서 들어보려고 했으나 꼼짝도 안했다는 이야기다.

남성의 힘은 부정적이지만 여성의 힘은 그렇지 않다는 암시가 여성 장사 설화에도 담겨 있다.

장미란 선수의 세계 신기록 수립 장면은 음지에 있던 역사 속의 여성 장사가 비로서 양지로 나왔음을 선포하는 듯 했다. ‘파천황(破天荒))!’ MBC TV는 여자 역도 장미란(25·고양시청)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 이런 자막을 내보냈다. 파천황은 원래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 상태를 깨뜨린다는 뜻으로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을 때 사용하는 한자성어다.

MBC가 이런 표현을 동원할 만큼 장 선수의 투혼과 기록은 놀라웠다. 장 선수에게는 흔히 ‘여자 헤라클레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여자’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역도(力道)가 단지 힘만 쓰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장 선수는 우승 직후 “체육과학연구원(KISS)의 비교분석과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잘못된 습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노력했다는 말이다. 여자 최중량급(+75kg)경기에서 인상 140kg과 용상 186kg을 들어 합계 326kg으로 우승한 장미란은 인상 한 차례, 용상 두 차례, 합계 두 차례 등 모두 다섯 차례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는 동시에 한국 여자 역도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주인공이 됐다.

옛 설화를 떠올린 천지개벽은 개벽이다. 현대에 와서는 여성 총리가 나오고, 여성 국회의원, 여성 CEO, 여성 판·검사 등이 각 분야에서 힘 자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운석 <시인·남구발전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