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영국 시인 키이츠가 ‘ 속세에 미련을 못다 버린 미모의 여승’이라 비유했던 도라지꽃. 수줍은 듯 신비한 꽃을 수녀나 여승이 쓰는 머리 고깔로 본 것이다. 들판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흰색, 보라색 도라지꽃은 아름답고 향기도 좋으며 뿌리는 좋은 먹거리를 제공해 준다.

도라지는 깊은 산중에서 저절로 나는데 요즘은 밭에서 대량 재배한다. 여름부터 가을까지가 제철. 늦여름에 채취한 것이 쇠지 않고 부드럽다. 종류에는 백도라지,약도라지,꽃도라지 등이 있다. 종류는 달라도 사포닌 성분은 같아서 약용과 식용으로 함께 이용한다. 대개 5년 이상 묵은 것이 약효가 좋으며, 4~5년에 한번씩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야 오랫동안 견디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한방에서는 도라지를 ‘길경’ 이라고 하는데 ‘ 귀하고 길한 풀뿌리가 곧다’는 뜻이다. 말린 것은 ‘백길경’이라는 호흡기 질환 치료약으로 써왔는데 우리나라 도라지는 품질이 우수하여 아시아 여러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도라지는 색이 희고 뿌리가 곧고 탄력이 있는 것이 좋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통도라지가 맛과 향이 더 좋고, 당분과 섬유질, 무기질이 풍부한 알카리성 식품. 특히 칼슘과 철분의 함량이 높고, 인삼처럼 사포닌이 들어 있지만 효능은 약간 다르다.

도라지에 들어 있는 사포닌은 꽃이 필 때 특히 많은데 기관지 점막의 분비작용을 도와 가래와 담을 삭혀주고 기침을 멈추게 해준다. 또한 열 내림 작용을 주로 하는 중추억제작용과 항염증작용, 혈관확장작용이 있다. 그러나 허약한 체질로 인한 만성 기침일 때는 각혈증세를 악화시킬 수 있고, 위궤양일 때는 위 점막을 자극하므로 사용하지 않는다.

강장, 강정의 효능이 있고, 쌉쌀한 맛이 잃어버린 입맛을 찾게 하지만 돼지고기와는 상극이다. 도라지 차는 감기에 유효한 건강 차로 알려져 있으나 도라지의 약효가 너무 강해 구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대추나 배와 함께 넣어 끓여야 한다.

소금물에 삶아 볶아낸 도라지나물, 쓴맛을 우려내고 가늘게 찢어 새콤달콤하게 무친 도라지생채, 당면과 함께 볶아낸 도라지잡채, 물엿으로 은근히 졸여낸 도라지정과, 찹쌀풀을 발라 말려 기름에 지진 도라지자반, 볶아 밀가루를 발라지진 도라지저냐도 맛있다. 통으로 말린 도라지는 불려서 산적,국, 잡채에도 넣는 등 평소에 반찬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식품이다.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뿌리채소,줄기채소, 잎채소의 삼색나물을 한 접시에 담는다. 이 때 흰색으로 반드시 들어가는 나물이 도라지이다. 뿌리채소인 무나 도라지는 찢지 않고 저며 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에서 연유해서인지 " 뿌리가 찢긴다"는 말을 삼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뿌리뿐만 아니라 어린잎과 줄기는 데쳐 나물로 무치거나 튀겨 먹고 김치를 담가 먹기도 했다. 남도의 산간 지방에서는 도라지김치나 도라지깍두기도 담가 먹는다.

서양 사람들은 도라지꽃 모양이 종처럼 보였던지 ‘벨플라우어’라 했다. 전설에 의하면 프시케는 밤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사나이와 사랑하게 된다. 정체를 봐서도 안 되고 물어서도 안 되는 터부의 사랑이었다. 연인의 정체가 궁금해 참을 수 없었던 프시케는 터부를 깨고 촛불을 든 채 사나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사랑의 신 큐피드로 옷에 떨어진 촛농이 단서가 되어 터부는 깨지고, 큐피드는 두 번 다시 프시케를 찾지 않게 되었다. 사랑을 잃은 프시케의 눈물이 도라지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중국의 <본초강목>에는 도라지는 여자의 속살을 예쁘게 하고 상사병을 낫게 하며, 질투 때문에 저주받아 생긴 병에 잘 듣는다 했다. 도라지가 사랑과 밀접한 음식이요 약초라고 한 점은 재미있다.

김정숙 교수 <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 김치발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