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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면 소재지에서 시장통을 찾아가면 300m 쯤 떨어진 곳에 적은 시냇물을 막아서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는 보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돌보＞ 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삼척동자에게 물어도 알만큼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돌보＞는 보성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예재(禮峙) 를 분기점으로 도림(道林) 쌍봉(雙峰) 의 물이 합쳐 능주를 거쳐 영산강으로 흘려 가는 상류가 되어 있다.

이 고을은 지형적으로 서출동류(西出東流) 남출북류(南出北流) 가 되는 만큼 옛날부터 춘양(春陽), 이양(梨陽) 고을을 비롯하여 능주(綾州) 고을은 피란의 터가 되고 자고로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무튼, 이 땅의 지형 때문에 특출한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이 고장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 <돌보>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이조 중엽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절에는 밭은 많았으나 논이 극히 적어서 그 만큼 논을 소중히 여겼고 그나마도 이것은 거의가 능주 고을 토호들의 소유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평민들은 가져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돌보는 이러한 땅에 젖줄처럼 물을 대어주는 소중한 보였다.

그러나 가뭄에 도움이 되었던 이 보도 장마철에는 범람하여 들판을 덮었다.

또 그런 다음에는 애써 막은 보가 터져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리곤 했다.

웬만한 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어 농사를 망쳐놓기 일수여서 지주들과 농민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또 다시 이 보가 무너져 흔적조차 없게 되자 사람들이 모여 빈터를 보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짓고 있었다.

이때 어떤 스님 한 분이 지나다가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여보시오. 쌍봉을 어느 길로 가야 됩니까?" "이 길로 가시요."

"고맙소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모여 계십니까?."

스님이 묻자 옆에 서 있던 지주가 자세히 사정을 말하였다.

청수(淸秀) 한 용모의 스님은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더니 말하기를, "한가지 묘책이 있으나 신기누설이요, 구도자로서 천형(天刑) 을 당한 행위이므로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고 하였다.

이 말을 듣던 지주들은 눈이 둥글해지며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여보, 스님. 무슨 신통한 계책이 있기에 그러시오?." " 무슨 방법인지 제발 좋은 방편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십시요."

여러 사람들이 모두 한마디씩 떠들었다.

"구도자(求道者) 로써 말씀드릴 수 없는 방편입니다." 스님은 여전히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 여러 사람들이 주림을 면하는 좋은 방편인데 무슨 죄가 됩니까?." 모두들 사정을 하였다.

스님은 한참 생각하고 있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과연 여러분의 말씀과 같이 이 일이 불가의 구기공덕(救飢德功) 이요, 유가(儒家) 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으로 생각하여 볼 듯 합니다. " " 과연 그렇지요."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물 속에는 한 처녀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육도(六途) 에 환생하지 못하고 이 못을 지키고 있으면서 억울하게 재앙을 일으키니 수신제를 모시며 남자를 물 속에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먼저 죽은 처녀의 영혼은 천도(遷渡) 가 되는 것입니다."

"그 후 삼년이 지나면 다시 닭을 잡아 대신하여 다시 남자의 영혼을 천도하여 주십시요."

말을 마친 스님은 쌍봉을 향해 가버렸다.

스님은 당시의 명관이오 세상에 많은 일화를 남겨 놓은 예언가 이서구(李書九) 선생의 도반(道伴) 최경산(崔景山) 스님이었는데 술수(術數) 에 밝기로 유명하였다.

말을 듣고 난 지주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을 잇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서있는 것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옳담......" "이 무슨 해괴한 방편일까?."

"듣고 보니 아니 들은 것만 못하게 되었구려!"

사람들은 스님의 말을 들은 뒤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 때문에 도리어 걱정이 더 해갔다.

" 세상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식을 재물로 팔아 넘길 자가 있겠는가?"

옛날 이야기 속에 심청이가 아니고서는 생각조차 어려웠다.

지주들은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해봤지만 묘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람이 무릎을 탁 치며 의견을 내 놓았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그 사람에게 쏠리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오?." " 어떻게?"

" 좋은 방법이라도 있오?."

"동네 주막의 주모에게 쉰량(五十兩) 에 아이를 사겠다고 귀뜸을 해주어 소문을 퍼뜨립시다." 모두들 그 말에 찬성하였다.

"그간 우리는 쉰량을 준비합시다."

과연 얼마 지난 뒤 어느 건달 하나가 쉰량(五十良) 돈에 군침이 돌아 계책을 가지고 나타났다.

산골에 살고 있는 어느 과부의 아들을 돈으로 꼬여 내자는 것이었다.

장치(帳峙) 아래 외딴 곳에서 외롭게 모자가 살고 있었는데 이 과부를 꾀어낼 심산이었다.

건달은 이름이 황보운(黃甫雲) 이었다고 한다.

황보 건달은 장치에 사는 과부 집을 찾아가 쌀과 고기를 내놓으면서 수작을 걸었다.

"아주머니, 얼마나 고생하십니까?"

인사를 하고 나서 적은 액수의 돈까지 내놓았다.

"이렇게 돈까지....."

과부는 천만 뜻밖에도 이런 선물을 받아 어찌할 줄 몰랐다.

" 앞으로도 자주 찾아 도와 드리겠습니다."

선심을 쓴 황보 건달은 돌아갔다.

그리고 가끔 찾아가 곡식과 의복으로 위로하여 주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내왕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과부의 사정과 마음을 파악하여 완전히 사로잡아 놓은 뒤 차츰차츰 거리를 좁혀가니 순진한 과부가 건달의 간특한 농간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삼경에 황보 건달은 이 과부를 찾아가 따뜻한 말과 갖은 수단으로 꼬여 마침내는 몸을 빼앗았다.

그 후부터 건달 놈이 항상 과부를 제 것 만지듯 다루기 시작하니 과부는 천년성이 무너지 듯 한번 당한 몸으로 하는 수 없이 서로 어우러지곤 하였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가냘픈 세로(世路)에서 어언간 의지가 되었고 잊었던 청춘의 욕정이 타다 남은 불씨처럼 다시 타올랐다.

이젠 한시도 사내와 떨어져서는 못 살 것만 같았다.

황보 건달은 여인의 마음 위에 돛을 세워 바람 따라 노를 저으며 간담을 뽑아 쥐고 방향을 조종하고 있었다.

어느 날 황보건달이 과부에게 넌지시 말했다.

"여보, 우리 이렇게 남의 눈을 피하여 밤으로만 서로 만날게 아니라 멀리 떠나 떳떳하게 살아봅시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정이 깊어가니 밤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하오." "그럼 제 자식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우선 부잣집에 맡겨두면 되지 않겠오. 가난한 집보다는 잘 먹여 기를 게요. 그리고 우리는 살기 좋은 곳에서 재미있게 살아봅시다."

달콤한 말에 앞뒤를 가릴 틈도 없이 과부는 결정을 하여 버렸다.

양심(良心) 이란 조금치도 없고 돈에만 탐욕이 차 있는 황보 건달은 과부를 멀리 끌고 가 주점에다 팔아 넘길 생각이었다.

이제 뜻이 이루어질 듯하게 되자 재빨리 주점의 주모는 토호인 지주들과 과부의 아들을 팔아 넘길 계책을 추진했다.

과부의 아들인 돌동(突童) 이는 십여세의 나이었다.

돌동이는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 품을 떠나 황보 건달을 따라 부잣집에 들어갔다.

건달은 즉석에서 쉰량을 받아 자기 집 뒤뜰에 묻어 놓고 과부 집에 찾아가 밤마다 농락을 하였다.

토호들은 택일을 하여 귀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아이를 물 속에 던져 수신제를 지내고 말았다.

이 말이 세상에 누설이 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면서 황보 건달은 과부를 데리고 남들의 눈을 피하여 보성 벌교를 거쳐 멀리 떠나 객지에 가서 홀아비에 팔아 넘기고 돌아올 심산으로 밤길을 나섰다.

예재(禮峙) 를 향하여 걸어가는데 난데없이 ＜우르르 !＞천둥소리가 났다.

하늘을 쳐다보니 검은 먹구름이 서쪽에서 하늘을 덮어 오면서 번쩍번쩍 번갯불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천둥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더니 삼대 같은 소나기가 줄기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산비탈 길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 하다가 옆에 있는 큰 바위가 하나 있는 것을 보고 재빨리 그 밑으로 들어가 숨었다.

하늘에서 고막이 터질 듯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바로 그 바위를 때렸다.

바위가 산산조각으로 깨지면서 황보 건달은 즉사하고 과부는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이상하게도 토호인 지주들도 반신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이 모두 알려지자 모든 사람들은 하늘이 내린 천벌이라 하였다.

그 뒤 다시 원통하게 죽은 동자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하여 인근사람들이 수닭을 한마리 구해 물속에 바치니 억울하고 불쌍한 동자의 영혼도 천도되었다고 한다.

그 뒤부터 여기를 돌동이가 죽은 곳이라 하여 돌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수백년을 그 많은 홍수에도 무너진 일이 한번도 없이 잘 보존되어 온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지금도 장마가 시작되거나 홍수가 시작할 때는 반드시 물빛이 두 갈래로 나타나며 가끔 삼경의 밤중에 황금빛 닭이 나타나 큰 목소리를 내어 몇 차례씩 운다고 한다.

옛날 토호인들은 이제 알 길 없고 그 시절 황보 건달이 천벌을 받았던 벼락바위도 일제의 철도 공사중 일부는 철거하고 일부만 남아 있다.

이젠 돌보의 이끼낀 돌사이에 물소리만 끊임없이 들리는데......

오늘도 지나는 사람들의 입에 돌보(突洑) 라고만 전하여지고 있다.

제공 /화순군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