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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친 불덩이는 까마득한 단애를 환하게 일으켰다. 하늘이 불타오르고 서서히 떨어질 때는 천 척 바위벼랑이, 수백 폭 병풍이 환하게 타오르고 급기야 강물로 뛰어들 때는 흐르던 물줄기 붉게붉게 번지고 구경꾼들 얼굴빛도 타올라 함성과 박수소리 사그라지지 않고. 다시 불덩이는 솟구쳐 어둠을 사르고….

장대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풍습, 화순 낙화(洛花)놀이.

“쪽배 타고 적벽 아래로 한 바꾸 돌아봐야 적벽을 알제”

동복 백아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옹성산을 감아 돌며 동복천(同福川)이 되어 보성강으로 흘러든다. 동복천 상류 청랑천과 적벽천은 수려하고 웅장한 절벽이 더할 나위 없이 절경이다.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물줄기는 물염연·창랑연·재벽연·고소연·봉황연·별학연 등 깊고 넓은 소(沼)를 만들어 내고, 그 절경 맑은 물빛으로 받아내며 능히 신비함을 자아낸다.

1519년 기묘사화로 동복으로 유배 온 신재 최산두(崔山斗, 1483∼?)는 동복천 따라 오르다 노루목에서 깎아 놓듯 솟은 절벽을 발견하고 ‘적벽(赤壁)’이라 이름하였다.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중국 황주에 있는 ‘적벽’과 같이 빼어나다 하였다. 석천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은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 하였다.

물줄기 따라 물염적벽, 창랑적벽,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적벽 낙화놀이는 장항적벽·화순적벽·이서적벽·동복적벽·망미적벽이라고도 부르는, 규모나 풍치 면에서 가장 뛰어난 노루목적벽에서 펼쳐졌다. 1970년대 광주시민의 식수원을 마련하기 위해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그 광경을 즐겼다.

북면 임곡리 정순택(60)씨는 “이루 말할 수가 없지”하며 노루목적벽의 잊혀지지 않는 풍경부터 얘기한다.

“전국에서 이름난 디여. 이런 디가 없는께 버스 수십 대가 몰려들었제. 아무한테나 화순적벽 가봤냐고 물어보문 안 가봤다는 사람 한 명도 없어. 뱃놀이 허고 모래찜질 올라고(오려고) 곗돈 붓고 했은께.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항시 좋제. 벚나무 피믄 꽃 따라 날아갈 것 같고, 백일홍나무도 이쁘고, 귀목나무 줄줄이 그늘진 디는 앙거(앉어) 있기 좋고. 한쪽에서는 활도 쏘고….”

노를 젓거나 대나무 장대로 강바닥 짚어가며 유유히 떠가는 나룻배 위에서 장구 치고 유행가 부르던 뱃놀이의 기억이 선하다.

"쪽배 타고 적벽 아래로 한 바꾸(바퀴) 돌아봐야 적벽을 알제 멀리서 보믄 몰라. 올려다보믄 끝이 없어. ‘악’ 하고 소리치믄 ‘악’ 하고 (메아리가) 울려. 물 건너 한산사(寒山寺)라고 절이 있었는디 배 타고 건너 가. 한산사 가문 동굴도 있고 폭포도 있고 약수도 있고. 물 귀경(구경) 바우 귀경 절 귀경, 하래(하루) 귀경치고는 배부르제.”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중단, 해방 이후 다시 살아나

이서면 야사리에 사는 정동오(71)씨는 수몰된 마을 ‘보산리’에서 살았다. 보산리에는 보암마을과 난산마을이 있었는데 보암마을의 ‘보암(寶巖)’ 즉 ‘보배로운 바위’가 바로 ‘적벽’을 말한다고 한다.

“대숲에도 집에도 고인돌이 있고 석탑도 있었고 ‘애계나무’라고 효자나무도 있었어. 어무니가 괴기 묵고 싶다문 얼음장 깨 갖고 괴기 잡아다 주고 복숭아 묵고 싶다문 산 속에서 복숭아 찾아 주고, 그런 효자가 죽어 갖고 자란 나무여. 글고 어른 및(몇) 명이 보듬아도 못 보듬는 정자나무가 있었는디 수몰된께 볐는디(벴는데) 빌라고 헌께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져. 못 비고 며칠 있다 볐어.”

잃어버린 고향, 옛 이야기만 수몰되지 않은 채 백일홍나무 꽃을 피우고 달집을 태운다. 적벽 낙화놀이도 결코 물 속에 잠길래야 잠길 수 없는 얘기. 동네 꼬마부터 다 늙은 할머니까지 동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겼던 놀이. 삶은 돼지고기와 막걸리로 어느 행사보다 푼푼했던 놀이다.

“고놈 볼 라고 해 떨어지기만 기달리제. 그 날은 동네방송 헐 것도 없어. 강변으로 싹 나와. 깜깜해 지는디 관광온 사람들이 갈 생각을 안해. 노는 디 음식 빠지믄 안된께 동네에서 술 받고 장 봐다가 낮부터 장만하고. 밤늦도록 농악 침서 놀았제. 그때는 그렇게 살았는디….”

낙화놀이는 매년 4월 초파일, 해지고 달뜨기 전에 행해졌다. 부처의 탄생을 기리고자 연등을 밝히는 것처럼 낙화놀이도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불교행사다.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낙화놀이는 조선 말기에는 벼슬아치들의 풍류놀이가 되어 아무 때나 행해졌다 한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중단되고 해방 이후에 다시 살아났다. 적벽 낙화놀이는 초파일뿐만 아니라 추석과 같은 명절에도 간혹 행해지고 1975년도에 생겨난 적벽축제에서도 했다. 부처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가 대명절 지역 축제로 관광축제로 확대된 것이다.

“훅∼ 던지믄 불이 뱅글뱅글 돔시롱 떨어진디…”

낙화놀이는 10여 명의 장정이 노루목적벽에 올라 불덩이를 던진다. 꽃불을 날린다. 그 천 척 단애를 어떻게 올랐을까?

“그것이 희한해. 바위벼랑 따라 줄줄이 길이 있단께. 포도시 밥상 하나 놀만한 폭으로 꼭대기까지 길이 나 있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간이 벌렁거려서 못 가제. 나는 글씨 써진 때까정은 올라가봤는디 아래서 째깐하게 보이던 글씨가 큼지막하더란께. 참말로 무사(무서워).”

지게를 짊어지고 줄줄이 올라간다. 그 지게 안에는 꽃불을 피우려고 미리 작업해 놓은 불쏘시개가 있었다.

“소 믹이는(먹이는) 마초를 산에서 해다가 말려 놓제. 잎 지다란(길다란) 것이 있어. 고것을 그냥 떨어트리는 게 아녀. 던지기 좋게 맹글제. 마초를 쨈매(묶어) 갖고 한 단씩, 사람 팔뚝마니로 질게(길게) 맹글어. 고 안에다 독(돌)을 넣고 또 한 번 쨈매. 무게가 있는께 멀리 날아가는 거여.”

전해오는 얘기 중의 하나로 그 불쏘시개 모양은 ‘용’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한다. 적벽 아래에는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사는데 용 모양의 달집을 태워 던짐으로써 이무기를 달래고 복을 비는 것이라는 얘기.

불덩이를 던지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절벽 위에서도 불덩이를 던질 만한 곳은 위험천만한 곳이어서 한 사람만이 그 자리를 찾아간다. 만일의 일에 대비해서 자신의 허리에 끈을 묶고 그 끈을 가까이 있는 소나무에 묶는다. 그러고 나서 불쏘시개에 불을 붙일 모닥불을 피운다. 나머지 장정들이 차근차근 불쏘시개를 전달하면 그것을 받아 모닥불에 불을 댕겨 던지는 것이다.

“한참 걸려, (불덩이가)쑥∼ 올라갖다가 쑥∼ 내려와. 훅∼ 던지믄 불이 뱅글뱅글 돔시롱 떨어진디 벼랑에 불붙은 것 같고 아래 (불덩이가) 비친게 시커먼 물에서도 불이 쑥∼ 올라오는 것 같애. 고 두 불 만날 때가 되문(물에 거의 떨어질 때) 훤하니 온통 불바다제. 고것이 물에 닿을락 헐 때 아직 사라지기 전에 욱(위)에서 또 하나 쑥∼ 올라오고, 그렇게 계속 떨어지는 거여.”

적벽 아래 불 구경하는 사람들 어찌 난리법석 아니었을까.

“하늘에서 불이 내론디(내려오는데) 얼마나 재미지겄어. 징 깽매기(꽹과리) 장구 치고, 연주를 얼마나 잘 헌지 몰라. 불 떨어진 거에 맞춰 따다다다 빨리 치기도 하고 춤추라고 장단 맞춰주고. (사람들) 박수소리 고함소리가 말도 못해. 기분이 좋제. 촌에 이런 귀경거리가 없어.”

그러나 그 낙화놀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더는 사람들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은 아주 먼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상수도 보호구역에 묶여, 철조망에 둘러쳐져 낙화놀이를 했던 적벽 조차 마음껏 바라볼 수 없다.

지역주민들은 ‘적벽을 돌려다오’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나라가 국민한테 죄짓고 있는 거여. 외국은 다 나가게 함시롱 이런 절경을 못 보게 허문 말이 안 되지. 음식 못 갖게 들어가게 하고 울타리 쳐서 물에 못 들어가게 하문 오염될 것이 뭣이 있겄어. 망미정(望美亭, 적송 정지준(丁之雋, 1592∼1663)이 병자호란 이후 적벽에 은거하면서 지은 정자)까지만 가도 훤히 보이거든. 댐 생기고 30메다(미터)가 잠겨 불었는디 워낙 큰께 지금 봐도 어마어마해. 글고 물꼬를 터 줘야해. 물 한 방울 흘러가지 못하게 막아불었는디 물이 살 수 있겄어. 은어 장어가 수도 없이 잡혔는디…. 물꼬를 터 주던가, 주암댐 있으니까 아예 헐어버리든가, 내 생각은 그래.”

제공 심홍섭(화순군 문화 관광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