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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명 변호사가 총장에 취임하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는 등 대학에 많은 변화가 나타나는 가운데 나는 7월 1일자로 임명된 정치외교학과 학과장의 직책에 충실하며 복직 후 오랜만에 강의와 공부로 한가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 기간에도 전혀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3월초 복직 때문에 급거 귀국하면서 미쳐 다 마치지 못한 타이완에서의 대학원 과정 때문에 자주 그곳을 다녀와야 했으며, 또 하나는 이미 몇 차례 거론된 바 있는 김홍명 교수의 채용 문제를 둘러싼 이러저러한 갈등을 조정해야만 했다.

9월에 접어들어 12일 이돈명 총장이 부임한 이후 학내에는 “그가 서울에서 몇 명의 교수를 데리고 온다더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한명이 김홍명 교수였다. 총장의 취임직후 나는 마지막 학기의 수강신청을 위하여 타이완을 다녀와야만 하였다.

4박 5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출근하였더니 법정대학(사회과학의 전신)의 분위기가 미묘하고 살벌하기 까지 하였다. 사연인 즉, 학과장인 나의 부재중에 이돈명 총장이 김홍명 교수의 특별채용을 요청하는 공문을 법정대학에 보냈고 그 처리과정에서 한충록 학장과 정외과의 김기삼 교수 사이에 갈등이 표출되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출국하기 전부터 이돈명 총장이 외부 인사를 조선대학교에 데리고 온다는 소문에 대한 학내의 반응은 그리 탐탁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새롭게 부임하여 할일도 많을 터인데, 제일 먼저 한다는 것이 교수 특채냐”는 기류가 많았던 것이다.

어떻든 귀국 후 출근하여 법정대학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며칠 전까지도 멀쩡했던 한충록 학장의 얼굴에 「대일밴드」가 두어 개나 붙여져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 무슨 일이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매우 겸연쩍게 웃으며 “창피해서 말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연인 즉, 나의 부재중 총장으로부터 김홍명 교수의 이력서를 건네 받아 대학으로 오는 과정에서 법정대학 학생회장이 “이력서 좀 보여 달라”고 하여 건네주었는데 그 학생이 그걸 복사하여 정외과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김홍명 교수의 채용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이를 교수들에 대한 압력 행사로 받아들인 김기삼 교수가 발끈하여 학장을 찾아와 항의하는 과정에서 손찌검이 발행한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튿날 총장이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총장실에 들어가 인사를 건네자, 이돈명 총장은 대만에 잘 다녀왔느냐는 인사와 함께 “오교수! 나 좀 도와 줘야겠네”라고 하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줄을 몰라 하는 나에게 그는 “서강대의 김홍명 교수를 우리 학교로 데려 오려고 하는데 정외과 교수들의 반대가 심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총장님, 그런 일이라면 정외과 학과장인 내가 귀국한 것을 기다려 나에게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라고 하자, 그는 “글쎄 그럴걸 그랬어. 어떻든 이제 오교수가 돌아왔으니 잘 좀 해결해 주소”하고 당부하였다.

나는 곧 학과 교수회의를 소집하여 「김홍명 교수에 대한 총장의 특채 동의 요청안」을 논의하였는데 분위기는 예상한데로 부정적이었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메기로 하고 교수들을 설득하였는데 요점은 첫째, 학내 구성원의 요청으로 대학에 부임한 이돈명 총장의 첫 번째 요청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느냐. 둘째, 정외과 교수 6명이 모두 조선대 출신인데 이는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타교 출신을 보충하자. 셋째, 내가 김홍명 교수를 잘 아는데 우리보다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능력 있는 교수를 받아들여야 학과도 발전하지 않겠느냐 하는 세 가지였다.

나의 설득이 주효했던지, 아니면 한충록 학장과 손찌검까지 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의외로 김기삼 교수가 순순히 “오교수 말대로 하자”며 동의하는 바람에 이돈명 총장의 동의 요청안은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학과의 동의가 있자 김홍명 교수는 곧 조선대에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는 부임하자 이내 나를 찾아왔다. 이미 70년대 말부터 인연을 유지하고 있던 사이인 때문에 나는 그를 점심에 초대하였고, 식사 후 캠퍼스 이곳저곳을 안내하면서 소문에 따른 염려와 충고를 함께 들려주었다.

“내가 듣기로 조선대에 부임하자마자 중요 보직을 맡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조선대의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고, 꼭 맡는다면 연구소장 직을 맡아 뒤떨어진 조선대학교의 학문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하면 후일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는 요지의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는 나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고, 앞에서 쓴 것처럼 22일자 보직개편 때 기획실장(서리)에 임명되어 나름대로 조선대학교의 개혁에 착수하였지만 그의 개혁은 학내 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한 가운데 추진됨으로써 곧 파열음을 초래하게 되면서 그의 앞길 또한 험로를 걷게 되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이미 고인(故人)이 되었고, 한 사람은 몇 년 전에 정년을 하였으며, 한 사람도 몇 달 후면 정년을 맞아 대학을 떠날 예정이니 세상사가 마치 한 점 뜬구름 같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오수열 <조선대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