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신분을 막론하고 모두 걸어서 오십시오"

이는 하마비(下馬碑)에 적힌 문구인데 하마비는 향교의 초입에 서 있다. "뭐라고? 나보고 걸어서 오라고?" 이는 흥선 대원군이 평복 차림으로 속리산 만동묘를 찾았을 때 했을 법한 말이다.

화가 난 흥선은 전국의 서원에 대하여 사액서원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라는 이른바 서원 훼철령(1871)을 내리고 만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늦가을이면 향교를 찾아가자. 행단(杏亶), 공자가 제자를 가르친 곳이 바로 행단인데 우리나라에선 살구나무 대신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아마도 은행 열매처럼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터다.

하마비를 통과하면 붉은 칠을 한 홍살문이 길손을 맞는다. 유학자들은 자나 깨나 종묘와 사직 그리고 백성을 위한 생각에 애가 닳아 마음이 늘 붉게 멍들어 있다고 한다. 그런 뜻에서 홍살문은 유학자의 마음 색인 붉은 칠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다음은 외삼문이다. 가운데는 신도(神道)라 하여 제관이나 헌관만이 지나는 길이고 그외 사람들은 동쪽(들어가는 쪽에서 보아 오른편)문으로 들어가선 서쪽 문으로 나와야 한다. 일반적으로 평지에 향교가 있는 경우 외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나타난다. 대성전 좌우로는 동무와 서무가 있는데 여기엔 공자의 제자와 우리나라 18현인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대성전을 지나면 다시 삼문이 나오는데 이를 내삼문이라 하며 출입하는 방법은 외삼문의 경우와 같다. 이 문을 지나면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이 나오고 그 좌우엔 기숙사 역할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서 있다.

대개 동재에는 양반의 자제가, 서재는 평민이나 서얼의 자제가 머물렀다. 동재의 학생은 동재유생이라 불렀고 서재는 서재교생이라 하여 차이를 두었다.

향교 건물은 전묘후학, 전학후묘 등의 배치 방법이 있다. 곧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앞이고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뒤인 경우는 전묘후학이라 하고, 전학후묘는 그 반대인 경우를 말한다.

향교를 떠올리면 우선 조선의 교육 의지와 백성 사랑에 가슴이 뭉클하다. 인터넷이나 다른 전달 매체가 활발하지 못했던 그 시절이니 국가의 시책이 올바르게 전달되기가 용이치 않았을 게고 교통 등의 불비로 교육의 기회가 균등치 않음을 인식한 조선의 위정자들,

그래서 그들은 1읍 1교(한 읍에 한 개 향교) 의 원칙으로 각 지방에 향교를 설립하였다. 그래서 향교의 설립 목적은 강학(교육)과 제향(선현봉사) 그리고 백성 교화와 장수(도서관) 등에 있었던 것이다.

교육 기회의 균등을 실천한 경우라고 할까? 향교엔 양반 자제는 물론 평민이나 서얼의 자제도 입학하였으며 나라에선 노비와 전답을 주어 재정을 충당케 하고 교수를 파견하여 교육을 담당시켰다. 물론 조선후기에 들면 교수 파견 등이 사라지고 말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제사는 대성전에서, 교육은 명륜당에서 했지만 향교 살림을 관리하는 공간은 교직사였으며 여러 서적이나 자료를 보관한 곳은 경판고 또는 존경각, 제기 용품을 보관하는 곳은 제기고(전사청)라 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 향교 설립의 의도가 변질되기 시작한다. 향교에 입학하면 면역의 특혜가 주어진 점을 악용하는 무리들의 장난이 심화되는데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 정원을 엄수했던 향교가 금전에 의해 부정 입학 등의 방법을 통한 병역의 도피처로 전락한다.

오늘날도 자꾸 시비거리가 되는 대학의 기여 입학제도라 할까? 향교의 원납교생(願納校生)이 그들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16세 이상의 교생을 액내생이라 하여 정원 규정에 의하여 뽑고 16세 미만은 동몽(童蒙)이라 하여 정원에 상관없이 뽑았으나, 조선 중기가 되면 양반의 자제는 액내생으로 동재에, 서민의 자제는 액외생이라 하여 서재에 머물게 했다.

그러다가 조선후기엔 동재생은 유생, 서재생은 액내교생이라 했으며 정원 외의 교생은 액외교생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주로 돈을 내고 병역을 기피하고자 들어온 원납교생들이었다. 원납교생이 낸 돈으론 향교의 보수나 중수 또는 신축 등에 충당했다.

이런 제도가 국가 재정수입을 감소하게 되자 국가에선 액내외의 모든 교생에게 시험을 보여 불합격자는 군역을 지게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돈을 받고 시험을 면해주는 면강첩 발행 등 자본의 힘에 밀려 혼탁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는데 그 결과 향교의 교육 기능은 서원에 밀리게 되었고 제사 기능만 유지하게 되자 그 기능을 회복하고자 양사재(하급), 사마재(상급), 흥학재 등의 교육 기관을 만들었으나 크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근대 학교에게 교육 기능을 넘겼다.

중국에서 왔지만 중국에 없는 향교, 유교 종주국은 과연 어디인가? 향교, 중국인을 흡입할 수 있는 좋은 관광자원일진대….

최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