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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죽기 전에 "훈요십조(訓要十條)"라는 글을 남겨서 자신의 뒤를 이을 왕들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열 가지 기본 지침을 제시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글은 왕건이 사망하기 직전인 943년 大光 (지금의 국무총리격) 박술희를 불러 받아 적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훈요십조의 열 가지 遺訓 가운데 "차령 이남이나 공주강 이남 사람은 반란의 염려가 있으니 벼슬을 주지 말라"는 조항이 들어 있어, 이것이 후대에 전라도 차별의 발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공주강은 지금의 금강으로 공주강 이남을 지금의 지도에서 본다면 논산, 대전, 금산 등을 포함한 충청남도 일부 지역과 전라도 전체가 된다.)

그런데 훈요십조가 위조된 것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어렵게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신생 왕조의 안정을 위해 각 지방의 유력한 호족들과 정략결혼을 계속하여 모두 29명의 마누라를 거느렸다. 吳氏인 이 여자는 바로 왕건이 쓰지 말라고 했다는 "공주강 이남 출신", 전라도 나주 태생의 여자다.

이 여자는 아들을 하나 낳아, 이 아들 "武"는 태자가 되었고 왕건의 死後 고려 2대왕인 惠宗으로 즉위했다. 王祖 초기 나라의 통일과 안정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 왕건이 유독 전라도 사람을 공직에서 배제할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더욱이 농경시대에 전라도는 최대의 곡창 지대로서 나라의 富가 몰려 있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 사람들을 배제하고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기는 심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 다음, 태자를 낳은 왕비가 전라도 여자고 그 태자의 외갓집이 전라도인데, 그런 아들을 앞에 놓고 全羅道 사람을 쓰지 말라고 했다는 건 우리의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작 왕건 자신은 전라도 사람을 매우 중용했다. 고려 건국의 제1 등 공신으로 왕건의 오른팔 노릇을 했던 신숭겸은 전라도 곡성 사람이고, 태조왕건의 열입곱번째 마누라의 아버지인 박영규(견훤의 사위) 역시 전라도 사람으로 강력한 勢를 형성하여 왕건 생존시 다른 두 딸을 후에 3대 정종이 되는 왕자에게 시집 보냈다.일단은 이런 정황 증거만으로도 왕건이 전라도 사람을 쓰지말라는 국시를 남겼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2대 혜종의 추종 세력과 3대 정종, 4대 광종의 추종 세력간 권력 싸움에서 우여곡절 끝에 왕건은 전라도 여자의 아들을 태자로 책봉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태자가 2대 혜종으로 즉위했으나 혜종은 불행히 2년 4개월만에 34살의 젊은 나이로 病死하고 말았다.

어쨌거나 왕건의 死後 2-3년간은 극심한 권력 투쟁이 벌어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서 왕건의 훈요십조라고 하는 것이 나타났다. 惠宗 자신이 바로 공주강 이남 출신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주강 이남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훈요십조의 내용이 혜종 在位時節 공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아무래도 정종 즉위 후 만들어져 선대의 이야기 속에 삽입시켜진 것이라고 보아야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것이다. 즉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한 정종과 그 추종 세력들이 선왕 혜종의 세력 기반이 되어 온 전라도 사람들을 축출하고자 만들어 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설혹 훈요십조라는 것이 선대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그 구절은 정종조에 날조되었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최재승<파인뉴스 편집인.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