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곡성 가곡리 마을. 제법 큰 마을회관이 있다. ‘가곡리 노인당’ ‘가곡리 부녀회’라는 커다란 간판이 2개 붙어 있고 들어가는 입구도 따로 있다.

노인당 문을 여니 아무도 없다. 부녀회 쪽 문을 여니 아주머니 네 분이 방 안에 있다.

“옛날 맹키로 당산제나 장승제는 지내야 허는디”

-남자분들은 어디 가고 아주머니들만 있어요? “오늘 출상인디 모다 거기 갔는갑소잉.”

-아, 오다 보니 사람들이 산일을 하고 있더니만 동네에서 출상이 있었군요.

-마을회관이 남자방 여자방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 있네요. “하믄, 남녀가 유별헌께. 아, 글고 항꾸네 있어봤자 재미도 통 없어. 아무 쓸짝 없어. 하하”

#마을 앞에 장승이 있던데….

“장승 때문에 난리가 났제. 아, 동네 길을 확장흘 때 장승을 옮길라고 헌디 장승이 솔찬히 깊게 백혀 있는 거라, 긍께 포크레인 기사가 딱 장승을 분질러 부렀어. 그래갖고, 난리굿이 안 났는가. 동네사람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갖고, 그 포크레인 기사를 죽인다 살린다 했제. 군청 담당직원 목을 띠뿐다 붙인다 한바탕 0난리가 났제.”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아,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옛날 맹키로 맹그러 놔야제. 감쪽 같이 붙여놨어. 그 장승이 영험이 있는 것이거든. 아, 도둑놈이 들어와서는 물건을 훔쳐 갖고 마을을 나갈라고 했는디 장승이 터억 버티고 못 나가게 해서 잡혔다잖여?”

“옛날 맹키로 당산제나 장승제는 지내야 허는디 말여.”“끊어져 분 것을 누가 다시 지낼 꺼여. 매구 칠 사람도 없는디.”“아, 왜 없어, 서대양반도 칠지 알고, 저기 길수양반도 칠지 알 것인디?”“맞어, 길수양반이 한번 메구를 잡으믄 참말로 신명이 났는디 말여.”“그 양반 대단했제. 넘 동네에서 길수양반 매구치는 거 볼라고도 왔잖여.”

“오층탑 간판이라도 좀 세워주씨요”

절대로 그것은 취재하지 말라는 ‘쩜당 십원자리’민화투판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산판에서 돌아온 마을 어르신들로 노인당이 시끌벅적하다.

-어르신, 동네 자랑 좀 해 줘요. “우리 동네? 자랑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여. 오산면에서는 우리 동네가 제일 커. 원래는 150호 정도 되았는디, 지금은 많이 나가 부렀다고 해도 80여 호가 살아. 그래도 우리 동네 같이 큰 디가 없제, 암.”

“초등학교 댕기는 학생이 젤로 많다고 면장도 얘기허드만. 영진아, 느그 애기들도 학교 댕기제?”

“폴세 당기제라, 벌써 5학년인디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나 봐요.“다른 동네에 비해 많제.”

주로 뭘하고 사나요? “동네 들어오다가 비닐하우스 많이 봤제? 그거이 다 버섯이여. 느타리도 허고 표고도 허는디, 재만이는 벌써 천만원인가 했다고 글제?”

천만원이나 했어? 야, 그 놈 부자되었네, 부자되었어.”

-동네가 의외로 골이 깊네요. “뒷산이 뒷골이고, 저 옆산이 오봉산이어. 그 산 넘어가 관음사라는 절이 있어. 그 절로 갈라믄 고개를 넘어갔는디 지금은 완전히 묵었어. 인자 길 없을 것이여. 우리 동네가 솔찬히 깊이 있는 마을이제.”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가시리라고 불러. 도끼자루 같이 골짜기가 길다고 해서 그렇다고도 허드만.”

-마을 성받이가 어떻게 돼요? “성받이? 우리 마을은 거개가 밀양박씨여. 옥과장터에서 밀양박씨라고 허믄 그냥 외상도 해 줘. 외상헌다고 허믄 가시리 박씨요? 허고 물어보제. 그러믄 무조건 외상이여.”

-회관 앞에 보니까 당산나무도 제법 크던데 당산제도 모시나요? “당산제? 에이, 그거 안 흔지 오래 되앗어. 제관 흘 사람이 없은께 못 지내제. 제관 흘라믄 넘 까다로와서 어디 흐것든가. 험헌 것도 못 보제, 험헌 디도 못가제, 험흔 생각도 못 흐제, 아, 부정탄다고 화장실 갔다와서도 목욕을 해야 허는디, 어디 그거 힘들어서 허겄든가?”

“아, 그래도 서원양반은 그렇게 공을 드리더니만 자석들이 다 안 잘 되았소. 큰 아들은 공장 사장이제, 둘째는 한전 과장이제, 셋째는 회계사 흐제, 넷째는 공무원 흐제. 아, 이만흐믄 안 잘 되었소?”

“그라제. 공 들이믄 머든지 잘 되는 법이제. 그나 저나 아쉬워. 우리 동네 당산제는 다른 동네 당산제하곤 달랐는디….”“맞어, 우리 동네는 장승제까장 항꾸네 지냈응께.”

-장승한테도 제를 지내나 봐요? “그랬제, 이래 뵈도 저른 장승은 다른 디는 없다글대? 근디 우리마을 뒤에 있는 탑 알지라?”

-예, 오층탑 말이죠? “그 탑이 보물인디, 어띃게 간판이라도 좀 세워주게 해 줏시요이.”

“맞어. 아, 사람들이 그 탑 본다고 수도 없이 찾아오는디. 아 간판이 없응께 사람들이 엉뚱헌디로 가서는 탑이 어딨냐고 물어보네. 그 탑 볼라고 경상도에서 사람들이 많이도 왔쌌데이. 그것도 관광버스를 들이대고 와. 그거이 대단한 것인개비여.”

#“밭 갈다 보믄 기왓조각이 수도 없이 나와”

-지금은 탑만 있는데 혹시 절이 있었던 것을 보신 분은 계신가요? “나가 올해로 여든 아홉인디 절은 없었어. 어른들 얘기로만 전해 들었제이. 근디, 있긴 있었는갑서. 아, 거기가 웃머실인디, 불당골이라고도 부르잖어. 긍거 봉께 더 안코랑이에 암자 같은 것이 있었는갑서, 보믄 작은 건물이 앉았을 만흔 밭이 안 있은가.”

“맞어. 밭 갈다 보믄 기왓조각이 수도 없이 나와. 거그다 절을 다시 지으믄 어뜰까. 그라믄 사람도 많이 올 것인디.”“절은 짓도 못해. 아, 거기 땅 주인이 누군디.”

-땅 주인이 누군데요? “고려 신씨들 것이여.”

-고려 신씨요? 아,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 후손 땅인가 보군요? “맞어. 나도 얘길 들었는디. 곡성에서 그 사람들 땅을 안 밟는 사람이 없어.”

-그럴 만도 할 거예요. 후백제군한테 포위된 왕건을 구하고 대신 죽은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왕건이 일등공신으로 봉하고 많은 토지를 그때 하사했을 겁니다. “그라고 공이 큰께 그라고 넓은 땅을 나라에서 줬것제.”

-탑이 있는 불당골 말고 또 뭐라고 했지요? “웃머실, 도동굴이라고 허제. 요 앞산을 오지봉산이라 허고, 마을 앞을 집앞이들, 정지밑에들, 매금뜰, 선암제뜰, 이지게라고 혔제.”

-들판 이름이 그렇게 많은 걸 보니 마을 앞 들판이 꽤나 넓나 봐요? “하, 넓제. 오산면에서도 제일 넓을 것이여. 그래서 우리 마을을 인동 사람들은 가시리 부자동네라고 해.”

-그런데, 어르신 저 러닝머신은 누가 기증했나 봐요? “군에서 사줬어. 동네 사람들 운동해라고. 아, 이런 촌구석에서 누가 운동부족이라고 저런 걸 사 준가 몰라, 참. 돈도 쌔뿌렀어 .”“아, 너무 그러덜 말어, 우리들 오래 살라고 사 준 건디.”“저런 거 사줄 돈 있으믄, 막걸리나 사 줄 일이제.”“아, 누가 요새 막걸리 묵는다고 그랴! 어이, 그 사진기로 우리 사진이나 박아 줄랑가?”

-그러지요. 자, 이리 모여 보세요. “대문짝만허게 내줘 봐. 알겄제?”

-오늘 초상났나요? 좀, 웃어들 보세요.

“저 양반 솔찬히 웃기네, 오늘 초상 난 거 어떻게 알았어?”

심홍섭 <화순군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