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가을이다. 찬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정신이 오롯해지는 시간이어서 그럴까? 감수성이 예민하여 그럴까? 음악회 등 정서적 활동이 제철을 맞은 듯 활개를 치는 계절이다. 괜히 나도 계절에 덩달아 책 읽는 감동이 더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하다.

이런 상쾌한 기분, 정서적으로 촉수가 고도의 감각을 발휘하는 때를 맞이하여 우리도 서로 소통하고 더불어 함께하는 연습과 훈련 그리고 그것이 요구하는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다문화 사회라 하여 외국에서 시집온 주부나 외국 노동자들을 감싸고 끌어안으며 서로 다른 문화권자 사이의 소통을 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정말이지 손뼉치며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우리가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재외 우리 동포에 대한 문제이다.

조선족, 과연 이는 어느 나라 후손이며 누가 붙인 명칭인가? 따져 물어보고 잘못이 있다면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당신 고향이 어디시죠? 예, 연변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조선족 이시군요." 우리 일상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조선족, 이는 중국이 55개 소수민족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한족을 제외한 나머지를 소수민족이라 부르는 중국 사람들, 그들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동북 3성에 살고 있는 우리 배달민족의 후손들을 구분의 편의상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이런 명칭에 옛 고조선 아니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개념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소중한 우리 혈연 붙이들을 그냥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으니 더욱 고민이다. 중국은 최근 조선족들이 전승해 온 아리랑, 널뛰기, 판소리 등을 자신들의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게다가 유네스코 등재까지 할 움직임이라니 이건 참 무슨 날벼락인가? 우리 문화재청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의 사상과 감정, 그리고 역사와 전통의 결정판인 아리랑이 중국 국가무형유산이라면 머잖아 한글이나 김치도 조선족이 계승, 발전해 온 중국의 글이요 음식이라고 말하는 것 아닌지? 분통이 터지고 소름이 돋는다.

판소리는 또 어떤가? 판소리는 오래 전 서사무가 같은 서사 갈래에 뿌리를 두고 조선 후기에 구체적으로 만들어져 민중의 삶을 핍진하게 반영하고 대변한 서민예술의 정화가 아닌가?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노거수 나무 아래 옹기종기 사람들 모여 앉아 창자인 소리꾼과 장단을 맞추는 고수 두 사람이 공연을 하곤 했는데, 여기에 청중이 함께 '얼씨구', '좋다', '잘 한다' 등의 추임새를 넣어주었으니 이른바 창자, 고수, 청중의 합동 공연 예술이 바로 판소리다.

서사를 진행시키거나 잠시 목을 쉴 때에는 소리로 하지 않고 말로 하는데 이를 아니리라 하며 극적인 장면 연출과 전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하거나 몸동작을 하는데 이런 행동을 발림 혹은 너름새라 한다.

판소리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락 장단을 사용하는데, 그 장단은 느린 진양조에서부터 점점 빠른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 등이 쓰인다. 판소리는 장단만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창조가 있어 장단과의 결합으로 감동을 자아낸다. 이 창조에는 우조(羽調)·평조(平調)·계면조(界面調) 등이 있다.

우조는 시원스럽고 엄한 가락이며, 평조는 온화하고 평온한 느낌을 주고, 계면조는 애원 처절한 가락을 지녔기 때문에 매우 숙연한 느낌을 준다. 이 창조는 판소리 유파의 성립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계면조 위주인가, 우조 위주인가에 따라 서편제 또는 동편제로의 분화가 나타났다.

목소리를 표현 매체로 사용하는 예술인 판소리, 판소리는 목소리의 특징을 설명하는 '목', '성음(聲音)' 등의 용어로 소리의 특징과 완성도를 나타낸다. 성음은 명창이 내는 소리의 특질을 해명하는 용어인데 '통성', '수리성', '천구성', '떡목' 등의 표현으로 소리의 등급과 완성도를 매긴다. '통성'은 뱃속에서 뽑아내는 호방한 소리를 말하며, '수리성'은 쉰 목소리와 같이 껄껄하게 나오는 소리이다. '천구성'은 거칠고도 맑으면서 높은 음역으로 내는 슬픈 선율의 소리를 말하는데 가장 좋은 '성음'으로 친다. '떡목'은 텁텁하고 딱 달라붙어서 별로 조화를 내지 못하는 목소리다. 이외에도 '양성, '노랑목', '귀곡성' 등 소리의 특징을 말하는 여러 용어가 있다.

아리랑, 판소리, 강강술래 등은 다름 아닌 우리 배달민족의 사상과 감정으로 쓴 역사서와 다름없다. 언제까지 저 멀리 외로운 해골인 냥 이국땅을 떠돌게 방치할 것인가? 머잖아 한글날이다. 한글날을 맞아 중국이 한글을 자기네 전통 문화유산이라고 선언하고 나오지 않을까 좌불안석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민족, 국가 운운하면서 신물나는 밥그릇 싸움은 제발 그만두고, 땅은 작지만 영혼을 맑게 하고, 대의를 위해 올바른 정신을 크게 키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판소리,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됨-

최한선<전남도립대 교수ㆍ광주예총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