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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열 살 줄은 서로 뭣모르고 살고, 스무 줄은 서로 좋아서 살고, 서른 줄은 눈코 뜰새 없이 살고, 마흔 줄은 서로 못 버려서 살고, 쉰 줄은 서로 가엾어 살고, 예순 줄은 서로 고마워서 살고, 일흔 줄은 등 긁어줄 사람 없어 산다.

이는 한국 민요 부부(夫婦)요다. 헌데 선출직 국가원수의 부인은 퍼스트레이디( First Lady)라고 한다. 미국에서 유래했는데, 처음 그리 불린 사람은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의 부인 돌리 메디슨이다.

남편 재임(1809~1817) 때가 아니라 그의 장례식 조사(弔辭)를 직접 쓰고 읽은 재커리 테일러 대통령이 그렇게 기렸다고 한다.

그는 부부가 함께 절친했던 3대 제퍼슨 대통령이 부인과 사별한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했다니, 원조(元祖)가 될 만하다. 허나 정작 미국에서 퍼스트레이디는 정식 호칭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미세스 프레지던트(Mrs. President), 우리처럼 ‘대통령 부인’ 이다. 오히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동 등에서 퍼스트레이디를 공식 칭호로 쓴다.

미국의 주지사와 큰 도시 시장 부인도 흔히 그렇게 부른다.

대통령 부부는 퍼스트커플, 가족은 퍼스트패밀리다. 그런데 북한의 ‘퍼스트레이디’가 화제다.

북한 매체 표현으로는 ‘김정은 원수의 부인 리설주 동지’다.

김정일 혼자 배를 쑥 내밀고 우쭐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에 익숙한 눈에는 북한 지도자가 날렵한 차림의 부인을 공식 동반하는 것은 놀랄 만한 변화다.

그렇다고 이걸 곧장 대외 개방 조짐으로 여기는 건 성급하다.

서구 언론이 제 관행을 쫓아 퍼스트레이디로 부른게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 ▲김일성의 첫째 부인 김정숙은 항일독립투쟁 동지였다. 김정일의 생모인 그는 1949년 넷째 아이를 낳다 사망했다.

김정일은 그를 ‘혁명의 어머니’로 우상화한 반면, 5명이나 되는 자신의 부인은 인민들이 이름도 모를 정도로 뒷전에 두었다.

자랑스럽지 못한 사연 탓도 있겠지만, 오직 김일성이 영원한 수령이듯 김정숙도 유일한 국모(國母)로 받들었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아닌 그 수령의 후계자다. 용모와 복색까지 할아버지를 흉내내듯 부인의 지위와 역할도 수령을 본받는가 싶다.

세대와 스타일을 바꾼다고 세습 왕조의 근본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김정은 국방위 제 1위원장과 퍼스트레이디 리설주가 동행하는 모습이 잇따라 북한 매체에 소개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 추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리설주가 26일 평양봉화예술극장에서 전승절(7월 27일) 59돌을 경축하는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 공연을 김 1위원장과 함께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공개행사에서 리설주를 소개한 것은 25일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이어 두번째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식 행사에 부인을 대동한 적이 없다. 최근 북한의 파격적 풍경에 대해 김정은 체제의 변화를 상징하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뒤에 숨어 명령과 지시로 일관하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신비주의 통치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들 앞에 거리낌 없이 나서며 정책 추진 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김 1위원장이 부인과 함께 북한매체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북한의 상당수 젊은이들은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결혼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던 부인을 대중에 공개하는 것은 주민들을 향한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기득권층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사전조치”라고 해석했다.

퍼스트레이디 리설주가 북한의 정책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적지않다. 양무진 북한 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리설주의 등장은 가족의 화목함을 과시해 주민들에게 안정감을 주기위한 의도”라며 “김정은이 강조한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영부인의 역할을 강화할 경우 북한의 개혁·개방 추진 속도는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김 1위원장이 연륜이 짧은데다 북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므로 낙관하는 것은 금물이다.

고운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