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오는 6월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할 북한문화재 특별전 출품 예정작인 고려 태조 왕건 청동상(좌), 서포항 출토 뼈피리(우) 등 90여 점의 북한문화재가 내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 전시 될 예정이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 된지 어느덧 60년 머지않은 올해 남북이 동일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한 민족임을 새삼 확인하는 행사가 열린다. 내달 12일부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하는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이라는 특별전이 그것이다.

북한 국보급 문화재 약 1,725점 중 90 여 점을 해방 이후 처음 서울에서 공개한다. 북한문화재 관련 최대 규모인 이번 특별 전시회는 이미 물꼬가 트인 남북한 경제협력과 인적 교류에 이어 남북 문화재 교류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평가다.

종전에 고구려 등 특정시대와 관련된 북한문화재 전시가 있었으나,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통하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한국전쟁이 있은 6월에 예정된 이번 전시회는 그 뜻을 더욱 깊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이건무 관장은 지난 3월 특별전 합의를 위해 개성을 방문, 조선중앙력사박물관(1945년 개관) 김송현 관장과 민족문화 동질성 회복을 위한 남북박물관 역할과 민족문화재 연구 등에 대해 긴밀하게 논의했다.

이 관장은 "해방 이후 남북 박물관 사이 첫 번째 교류사업인 이번 전시회는 남북문화재 학자들이 상호교류를 활발히 하는 계기가 돼 우리 문화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회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부터 기획한 것으로, 새용산 국립박물관 개관을 기념을 목적으로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의 문화재를 가져와 특별전을 열면 어떻겠나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특별전 계획 수립부터 전시품 남한 이송까지 실무를 총괄 지휘한 국립중앙박물관 조현종 고고부장은 "민족 화합을 위한 북한 유물의 국내 전시라는 대전제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양측간 이견의 없었다"며 "통역이 따로 필요 없는 사이라 협의 과정은 전반적으로 순조로웠다"고 말했다. 중대한 역사적 의미 지닌 유물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대한 안전하게 서울로 이송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협의를 이끌면서 남북간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이질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조 부장은 "북한 사람들은 완벽하게 정리정돈된 상태에서 손님을 맞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특정 문화재 실견을 요청했을 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는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데, 보여주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정리된 모습을 통해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북측 문화재 당국자로부터 받은 인상을 소개했다.

그간 남북 문화교류사업은 민간 학술-통일관련 단체들이 주도하는 양상을 띠었다면, 이번 전시회는 남북 관계자 양측이 중국 북경, 개성 등에서 직접적인 접촉을 갖고 합의를 도출한 것이다. 조 부장은 몇몇 관계자와 지난달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서 유물들을 실견하고 국보급 유물 50점 등 총 90 유물을 직접 선정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될 유물 선정에서 중앙박물관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우리가 이 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전시대를 망라하는 우리 문화재 가운데 최고(最古) 및 최초(最初)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보급 문화재 50점, 준국보급 11점을 비롯한 총 90점은 각기 고유한 시대적 특성을 지닌다. 특히 우리측에 자료가 전무하다시피한 고조선, 삼국시대 고구려, 발해 등의 대표적 유물들의 전시는 큰 성과로 평가된다.

주요 문화재로는 한반도에서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구석기와 청동기인 '상원 검은모루 출토 구석기'와 '신암리 출토 청동칼'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로 알려진 '서포항 출토 뼈피리'(함경동 출토)가 있다. 또 고구려인들이 남긴 주요 금석문 중 하나인 '고구려 평양성 석각(石刻)’도 볼 수 있다.

미술품 중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지난 1993년 개성 태조 왕건릉에서 출토된 '왕건 청동상'이다. 고려 10세기 말~11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처음에는 청동불상으로 알려졌다가 추후 연구 결과 고려 태조 왕건상으로 밝혀져 국내는 물론 일본 학계까지 주목하는 작품이다. 고려시대 불상은 다수 출토된 바 있으나, 왕의 얼굴이 제작돼 발견된 것은 문화재 역사상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 중앙박물관측 설명이다.

이와 함께 신석기시대의 생선뼈무늬를 새긴 금탄리식 토기, 김홍도의 '선녀도', 고려 금속활자 등 유물들은 내달 12일부터 8월 16일까지 용산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며, 8월 말에는 대구로 이송돼 두 달 동안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지방관람객들을 만난다.

국립중앙박물관 이건무 관장(오른쪽)과 북한의 조선중앙력사박물과 김송현 관장이 지난 3월 24일 개성에서 만나 북한 문화재의 남한 특별전 개최 등을 골자로 하는 문화재 교류방안을 협의 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올해 들어 연이어 민·관 차원에서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남북 문화재 교류의 연장선상에 있다. 문화재청은 올 초 북한 국가과학원과 남북한 천연기념물을 CD롬으로 제작하는 작업을 공동 완료했다. 또 고구려연구재단은 지난 달 광복 후 처음으로 북한학자들과 함께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천도(427년)이 후 장안성 천도까지 사용된 궁성으로 알려진 안학궁지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아울러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구려 고군벽화 실태 조사를 지난 4월 진행했다.

그러나 북측 문화유산을 국내에서 감상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앞두고 북한 문화재에 대한 일반적 관심이 더욱 고조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북관대첩비 반환 등 민간 주도로 진행 돼 온 남북 문화재 공조업무가 탄력을 받으려면 정부 당국의 관심과 체계적인 협상 시스템이 더욱 절실하다. 지금과 같이 남북문화재 교류 현황을 정리한 총론적 자료도 갖추지 못한 채 문화부, 통일부 등 여러 부처로 문화교류 관련 대북 협상창구가 흩어져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달 개최된 제 18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경제분야에 편중됐던 협력분야를 문화유적 보전 등으로 한층 확대키로 합의한 것은 남북문화 협력을 당국 차원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음을 재차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조 부장은 "길게 봤을 때 북한 문화재도 결국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임을 역설하며, "미래를 대비해 정부가 대북 협상 창구를 통일하고 미리부터 문화재 공동 관리-발굴-연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