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로 뜨거웠던 2012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당선된 쪽은 정권 인수할 준비에 들떠있는 모양이지만, 낙선된 쪽은 책임공방과 당을 추스르는 일로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5천만 국민의 선택에서 불과 3.6% 차이로 결정된 당락의 결과가 이토록 극명한 차이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승자독식(Winer-Take-All)의 대통령중심제가 갖는 냉혹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당선과정에서 국민들의 표심(標心)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대결, 2030세대와 5060세대 간의 대결, 부유 세력과 가난한 세력 간의 대결 등 여러 가지가 지적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인 가운데 하나는 역시 영남과 호남에서 나타난 특정후보에 대한 몰표현상이었다.

대표적으로 광주의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에게 92.0%의 몰표를 준 반면, 박근혜 후보에게는 7.8%의 표 밖에 주지 않았다. 반면 대구는 박근혜 후보에게는 80.1%의 높은 지지를 보내주면서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19.5% 밖에 지지하지 않았다. 지역정서가 선거에 여전히 위력적임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를 영·호남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어떠할까? 호남으로 불리우는 광주·전남·전북에서 박근혜 후보는 10.3% 밖에 득표하지 못한 반면 문재인 후보는 89.2%를 득표 하였다. 반명 영남으로 불리우는 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에서는 박근혜 후부가 68.7%를 득표한 반면 문재인 후보는 30.8%를 득표하는데 머물렀다.

이 수치만을 보더라도 영·호남 간에 존재하는 유권자 수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다. 이번 18대 대선의 총 유권자 수는 40,507,842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호남지역이 3,982,798명(10.2%)인데 비하여 영남지역은 10,193,249(26.1%)으로 3배 가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086,034표 차로 낙선한 문재인 후보가 호남지역을 제외한 여타지역에서의 득표율에 변함이 없다는 가정 하에 박근혜 후보를 이기기 위해서는 호남지역에서 득표한 2,842,406표(득표율 89.2%)에 이 지역에서 최소한 53,017표(1,086,034표의 과반수)를 더 얻었어야만 한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호남지역에서 얻은 표가 총 336,185표(득표율 10.3%)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제인 후보가 호남지역에서 100%의 득표를 했더라도 문재인 후보의 당선은 불가능 했을 수밖에 없다.

다만 77.9%에 머물렀던 호남지역의 투표율이 100%로 상승하고 이들이 모두 문재인 후보를 지지 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대선 결과를 객관적으로 고찰할 때, 아무리 호남지역민이 똘똘 뭉쳐 지지하는 후보라고 할지라도 여타지역에서의 상당한 지지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호남 지역민들의 정치적 희망이 달성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하겠다.

어떻든 선거는 끝났고, 그 결과는 호남인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호남정치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첫째, 대선 결과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 우리가 희구하는 정치적 이상과 기대는 실현되지 않는 것일까. 목표설정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 방법에 잘못이 있는 것인가를 성찰해 보아야만 한다.

둘째, 상실감의 원인이 단순히 우리가 밀었던 문재인 후보의 패배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92%라는 몰표를 주었음에도 패배한 데에서 나온 우리 능력의 한계를 느낀데에서 나온 것인지를 성찰해야 한다.

단순히 문재인 후보의 패배에서 비롯된 상실감이라면 5년 후 보다 좋은 후보를 만들어 내면 되겠지만, 우리 능력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새로운 전략의 도출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 지역의 ‘지배정당’인 민주당을 어떻게 개조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민주당이 공천하면 무조건 찍어주어야 하는 것인지,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치 하에서 지역발전이 희생되어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대가라고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깊게 고민해 볼 일이다.

신임 원내대표가 “뼈 속가지 바꾸겠다”고 했으니 진정한 환골탈퇴로 나타날지 적당히 성형하고 나올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

넷째, 지역 학계와 시민단체들도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가와 지역발전을 위하는 일인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호남이 ‘독립국가’를 만들어야 할 것이지, 대한민국 안에서 통합되면서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민주·복지국가를 도모해가야 할 것이지 하는 근본 문제를 토론해야 만하지 않을까 싶다.

대선패배의 원인을 민주당의 전략과 준비 부족으로 진단하는 수준의 인식은 지역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다섯째, 호남의 역량이 제한적이고 따라서 갈수록 소외되고 고립되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때, ‘승자독식의 대통령중심제’ 보다는 ‘권력분점’의 내각제로의 개헌을 제기해야 하며, 그것을 민주당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호남지역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는 지역민의 상실감이 심화될수록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는 탄탄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표정 관리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는 말처럼 지금 호남 지역민들에게 적실(適實)한 말은 없을 것이다. 이번의 패배를 성찰의 계기로 삼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고 다시 뛰어야 후손들에게 멍에를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음을 우리 모두 공감했으면 한다.

오수열<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