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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3일
<고운석 칼럼>세계대전 100주년 맞는 한국은
입력시간 : 2018. 03.08. 00:00


전쟁은 파괴의 과학이자 죽음의 향연이다. 한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항복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 전쟁으로 100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아픈 상처를 남겼다.

종전을 수개월 앞둔 1918년 1월 8일,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우리에게 ‘민족자결주의’로도 유명한 ‘14개 평화원칙’을 발표했다.

윌슨의 평화원칙은 강대국들에 식민 지배를 당했던 수많은 약소국 민족들에 커다란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우리나라의 3·1운동도 이에 힘입은 민족운동 중 하나다. 1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를 상대로 식민지 경쟁을 벌이던 유럽 제국주의 국가간 싸움에서 비롯된 커다란 전쟁이었다.

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연합국과 독일·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웠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견제하던 독일이 오스트리아·이탈리아와 손잡고(삼국동맹), 독일을 견제하던 프랑스가 영국·러시아와 동맹을 맺으면서(삼국 협상)유럽 대륙엔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전쟁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세르비아를 지원하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를 지원하던 독일이 대립했고, 이어서 러시아와 동맹이던 영국·프랑스가 참전하면서 총 40여 국가가 전쟁에 뛰어드는 이른바 ‘세계대전’으로 확대됐다.

전쟁이 3년 차에 접어들 무렵,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가했다. 미국은 그동안 ‘먼로주의’에 따라 유럽 제국주의 국가간 싸움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다.

오히려 한창 전쟁 중이던 영국·프랑스 등 유럽 주요 산업국가들을 대신해 각종 물자를 생산하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일구고 있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혁명(2월 혁명)이 일어나고, 독일이 잠수함 작전을 펼치면서 영국·프랑스 등 연합국이 불리해지자 결국 1917년 4월 참전을 결정했다.

러시아의 레닌이 10월 혁명까지 성공시키고 공산국가를 수립하자,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은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에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제국주의 전쟁에서 빠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고, 실제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강화 조약을 맺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에 레닌이 ‘우리는 약소민족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사회주의가 확대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를 견제하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윌슨은 1918년 1월 ‘14개 평화원칙’을 발표했다. 제 1조부터 철저하게 ‘비밀외교’를 비판하고 공개적인 국제협약을 체결하고자 함이다.

러시아와 독일이 비밀리에 접촉해 강화조약을 맺으려고 하는 것을 비판한 조항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민족자결주의의 뜻을 담아냄으로써 약소국 지지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윌슨의 이 같은 주장은 러시아·독일 간 강화조약 체결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이상적인 평화를 위한 원칙으로 연합국 사이에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윌슨의 이상주의는 유럽 제국주의 국가 간 ‘땅따먹기’ 자리였던 ‘파리 강화회의’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 대표들은 1919년 1월 18일부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파리 강화회의를 열었다.

처음에는 윌슨의 평화 원칙에 집중하면서 세계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엿지만 국제 연맹의 창설과 민족자결주의뿐이었고, 나머지는 패전국인 독일에 전쟁의 책임을 묻고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리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조항들 뿐이었다.

독일 국민들은 파리 강화회의에서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 국민의 등에 칼을 꽂았다’고 생각하고, 연합국에 대한 원망을 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윌슨 대통령은 평화 원칙의 일부가 반영된 베르사유 조약만이 세계대전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1918년 상·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서 민주당 소속이던 윌슨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고, 베르사유조약은 미국 상원에서 끝내 비준되지 못했다.

역사학자들은 윌슨이 주장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오직 패전국 식민지에만 적용됐을 뿐이고, 사실 그가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를 완성하려고 한 것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윌슨은 “편을 가르고 맞설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의 편이 되어 공동의 평화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는 2018년 오늘날 우리 한국은 앞으로 안전할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고 운 석 <시인>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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