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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와 세시풍속에는 우리 고유의 문화가 담겨있다. 하지만 외국문화를 따라 하면 세련되어 보이고, 한국풍속을 찾으면 촌스럽게 보인다는 생각이 은연중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게 사실이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와 3월 14일 화이트데이는 일본의 한 제과회사가 마케팅 수단으로 시작한 것이다. 80년대에 한국에 들어와 젊은 연인들의 기념일처럼 자리잡았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를 빚은 10월 말의 핼러윈데이도 미국문화가 전파되면서 한국의 젊은층에서 유행되었다.

빼빼로데이 11월 11일은 날씬해지기를 원하는 뜻에서 11자 모양의 막대 과자를 선물로 주고받는 제과업계의 ‘데이 마케팅’ 전략이 담겨있다. 이날은 ‘농업인의 날’이다. 농업인의 날로 정한 이유는 한자 11(十一)을 합치면 흙 토(土)가 되기 때문이다. 농민이 흙에서 나고, 흙을 벗삼아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아 한자 ‘土月土日’을 아라비아 숫자로 풀어쓴 것이다.

빼빼로데이에 대응하여 당국에서는 11월 11일을 ‘가래떡 데이’라고 홍보한다. 우리 떡 중에 가래떡이 11자처럼 생긴 데서 착안한 것이다.

정월대보름 다음 날인 음력 16일은 ‘귀신날’ 또는 ‘까치날’이라 해서 외출을 삼갔다. 귀신이 활발해지는 밤이 되면 귀신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대문가에 채를 걸어두기도 했는데, 귀신이 구멍의 개수 세는 것을 좋아해서 구멍 세다 날 새는 줄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의 재기 넘치는 발상에 웃음이 난다.

우리 풍속 중 가장 아름다운 날은 칠월칠석이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그것도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다. 옥황상제의 손녀로 고귀한 신분의 직녀와 목동 견우의 사랑은 로맨틱하고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다. 상제의 노여움 탓에 각자 헤어져 살다가 일 년에 딱 하루만 은하수 위에 놓인 오작교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때 두 사람이 흘린 눈물을 칠석우(七夕雨)라고 한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한 나라의 전통문화 가운데 특히 세시풍속은 민중들 속에 켜켜이 내려오는 귀한 유산이다. 거기에 시간과 세월이 덧입혀지면서 변화되고 다듬어지다 보니 제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꽃을 피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음력 5월 5일 단오는 설, 추석, 한식과 함께 4대 명절 중의 하나였다.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중국에서는 거세게 반발했다. 단오는 본래 중국 초나라 때 문인 굴원이 멱라수에 빠져 자결하자,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祭)를 지낸 데서 유래한다. 이후 중국은 단오를 지내지 않고, 우리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양력 4월 5일쯤 오는 한식도 중국에서 비롯됐다.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이 충신 개자추의 죽음을 슬피 여겨 그가 죽은 날은 불(火)의 사용을 금지했다. 이 날은 전날 해둔 식은 밥을 먹는다는 ‘한식(寒食)’이 되었고, 그 후 중국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는 어디에서 유래했느냐보다는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한복, 한지, 한춤, 한식, 한옥, 국악, 국궁 등은 한국을 대표하는 고유의 ‘한(韓)문화’이다. 하지만 한복 대신 양복과 양장, 한춤보다는 힙합과 서양 춤, 한식보다는 일식과 양식이 고급식탁으로 보인다. 외래문화에 밀려 우리 음악을 ‘음악’이라 하지 않고, ‘국악’이라고 한다.

고유의 우리 것에 굳이 ‘한(韓)’을 강조해서 이름하는 것일 수 있으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서얼 취급(?)을 받는 느낌이랄까. 다시 한번 주문을 건다. 한류(韓流)는 세계의 중심,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