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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고 용맹한 생선으로 ‘남도 수계(水系)의 왕자’로 불리는 가물치. 가물치는 대체로 연못이나 늪처럼 흐리고 고여 있는 물을 좋아한다. 깊이가 1m 안팎이고 물풀이 우거진 곳에서 산다. 수온변화에 대하여 견디는 힘이 강하고 산소함량이 적은 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아가미의 등 쪽에 있는 특수한 공기호흡기관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식성은 육식성으로 주로 물고기나 개구리 등을 잡아먹는다.( 최기철 「우리 민물고기 백가지」)

산소가 거의 없을 정도가 돼도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여, 가물치를 ‘민물의 대장군’으로 부르기도 한다.

가물치의 한자 이름은 예(禮)를 갖춘 고기란 뜻으로 예어(?魚)라 한다. 밤만 되면 머리를 반드시 북향으로 내밀어 자신들의 수호신인 북두칠성에게 예를 올리고, 물고기는 알로 부화하는데 반하여 사람처럼 새끼를 낳고, 일부일처로 암수가 같이 있다. 또 여느 고기는 부화하면 새끼 곁을 떠나는데 아비 가물치가 새끼들이 자랄 때까지 지켜주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알고, 고기의 쓸개는 쓰디쓴데 가물치의 쓸개만은 달디 달아 많은 병에서 구해주니 합하여 오륜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도교신자나 무당들은 가물치는 먹지 않는 금기식으로 되어있다. 가물치 두 아감덮개 뒤에 북두칠성처럼 일곱 개의 반점이 있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은 인간의 수명을 좌우하는 신성한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불가(佛家)에서도 가물치를 영물시하는데, 몸에 붙은 비늘수가 108개인 불교의 성스러운 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물치가 나타나면 가뭄이 든다는 속전(俗傳)이 복합되어 한국 사람들은 약용 외에는 가물치 먹기를 꺼려왔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 가모티는 성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부종에서 물을 빠지게 하고 다섯가지 치질을 고치는데 특효가 있지만 부스럼이 있는 사람은 먹으면 안된다. 부스럼이 낳은 자리에 흰자국이 남는 까닭이다.”라고 적고 있다.

황필수의「방약합편」에는 “ 가물치는 맛이 달고 성이 차다. 부종이나 치질에 좋지만 부스럼이 있는 사람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쓸개는 인두염에 좋다”고 나와 있다. 오한을 치료하는 약으로 잘 쓰이며 특히 살충제나 치질치료제로도 좋다.

주요 영양소(100ｇ당)는 단백질 18.2ｇ, 칼슘(71㎎), 인(193㎎), 나이아산(7.7㎎) 등 질이 우수한 단백질의 함량이 많고 소화성도 좋다. 또 칼슘이 다른 생선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이 특징이며 여름이 제철이다.

여성의 산후조리용 보양식품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민물고기가 가물치다. 이규경의 「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산모가 산후에 먹으면 백가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또 조선조 광해군 때 유몽인(柳夢寅)이 쓴 어유야담(於于野談)에는 어머니나 산모 등 여성에게 좋은 음식이라 하며 가모치(加母致)라고 소개했다. 지금도 순창, 장수지방의 오래된 마을에는 처마 끝에 가물치 대가리를 새끼줄에 매달아 놓은 것을 볼수 있다고 한다. 기력이 쇠해지면 고아먹고, 오줌줄기가 막힐 때는 수세미와 함께 고아 먹으면 가장 좋은 구급방이 되기 때문이다.

가물치는 보신용으로 푹 고아 만든 곰이 좋고, 가물치의 별미를 맛보기 위해서는 가물치회가 애용된다. 가물치회는 가물치의 껍질을 벗기고 살만 도려내어 막걸리에 빨아낸 다음 초고추장에 양념을 넣고 무친다. 막걸리에 빠는 것은 가물치의 비린내와 잡맛을 제거해 주어 살점이 꼬들꼬들해진다.

가물치의 암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공동으로 수초의 줄기나 잎으로 ‘둥지‘를 만든다. 여기에 햇빛이 잔잔한 날 알을 낳고 새끼를 보호다. 송수권 시인은 은 가물치의 집을 보고‘물위의 둥지’를 읊었다.

나는 긴 봄날 강둑에 앉아서 가물치 같은 그대를 생각한다/ 물위에 둥둥 뜨는 둥지/ 물 속 한 세상 흐드러진 청보리밭 위에 / 외롭게 떠 있는 가물치집/.... 땅위에 기반을 두지 못하는 떠도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한다. 물위에 집을 짓는 그대를... ’

김정숙 교수 <전남과학대학 호텔조리 김치발효과>